경질땐 이라크전 실패 인정 놔두자니…럼즈펠드 딜레마

  • 입력 2006년 4월 1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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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럼즈펠드(사진) 미국 국방장관의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제 퇴역 장성들을 넘어 정치권까지 확산되고 있다.

▽꼬리 무는 사임 요구=부시 대통령이 14일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럼즈펠드 장관의 열정 넘치고 집요한 리더십은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꼭 필요하다”며 전폭적인 신임을 보낸 것은 럼즈펠드 장관 사임 요구를 조기에 잠재우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지지 표명은 오히려 논쟁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라크전의 현장에서 근무했던 퇴역 장성들은 럼즈펠드 장관의 독선과 독단을 비판하며 “협박이 아닌 팀워크를 아는 장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이 문제는 정치권으로 번졌다. 민주당의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와 다이앤 페인스타인 상원의원은 각각 “전직 장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팀을 갈았어야 했다”며 사임을 촉구했다.

▽럼즈펠드가 어찌했기에=9·11테러와 이라크전 때 럼즈펠드 장관은 카리스마 넘치는 ‘미국의 영웅’이었다. 매일같이 언론 브리핑에 나와 날카로운 언변을 선보인 그는 미국의 힘을 상징하는 리더였고, 옆에 선 리처드 마이어스 합참의장은 충실한 보좌관일 뿐이었다.

이는 ‘군의 문민통제’라는 미국의 오랜 전통을 그대로 구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군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민간인이 충분한 대비도 없이 어처구니없는 모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1991년 걸프전 때와도 비교됐다. 당시 모든 작전과 언론 브리핑의 주도권은 콜린 파월 합참의장이 쥐고 있었고 딕 체니 국방장관은 그저 지켜보는 처지였다.

▽경질 가능성은?=럼즈펠드 장관이 당장 교체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체니 부통령 등 백악관 내 그와 정치적 운명을 같이하는 지원세력의 엄호가 만만치 않은 데다, 그를 경질할 경우 이라크전 실패를 고스란히 인정하는 꼴이 되는 정치적 부담도 크다.

하지만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럼즈펠드 장관 사임을 둘러싼 정치적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인 데다,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이라크 상황도 계속 그의 발목을 잡을 전망이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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