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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4월 17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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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전 푸른색 잉크로 비극의 현장을 36쪽의 종이에 옮겼던 사람은 당시 53세의 이혼녀이자 작가였던 헬렌 처칠 칸디 씨. 일기에 따르면 그녀는 그해 4월 10일 영국 사우샘프턴 항에서 타이타닉호가 출항한 직후 60세의 미국인 예술가 에드워드 켄트 씨를 만난다.
첫눈에 끌린 두 사람은 배 위의 호화식당에서 여러 번 데이트를 했다.
4월 14일 저녁. 여객선이 빙산에 충돌하자 켄트 씨는 그녀를 찾아 헤맸다. 마침내 그녀를 보트가 있는 곳까지 안전하게 데리고 갔지만 정작 켄트 씨는 침몰해 가는 배에 남았다.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먼저 구조하기 위해서였다.
보트에 오르기 전 그녀는 켄트 씨에게 마지막 선물을 남겼다.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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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디 씨는 보트에서 지켜 본 타이타닉호의 최후를 이렇게 적었다. “너무나 느리고 조용한 낙화(落花)였다. 큰 배 위에서 인생들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날카로운 비명도, 울부짖음도, 필사적인 외침도 없었다. 대신 최후의 고통에서 새어 나오는 무거운 신음만이 있었다.”
1년 뒤 칸디 씨는 뉴욕으로 찾아온 켄트 씨의 여동생을 만난다. 여동생은 오빠의 시신에서 나온 유품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에게 준 그녀의 보물들이었다.
칸디 씨는 1949년 90세에 사망했다. 그가 보관했던 은병(銀甁)은 지난해 경매에 나와 3만4000파운드(약 5700만 원)에 낙찰됐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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