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천광암]일본 逆세대교체의 교훈

  • 입력 2006년 3월 9일 02시 59분


2일 일본 기자들이 아베 신조 관방장관에게 물었다.

“민주당이 국회대책위원장에 와타나베 고조 의원을 임명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베 장관이 대답했다.

“놀랐습니다. 뭐랄까. 마치 아버지(아베 신타로 전 자민당 간사장)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일본 정치의 시곗바늘이 19년 전으로 돌아갔다고 그가 익살을 떤 이유는 한 장의 사진이 잘 말해 준다. 사진 속에는 당시 자민당의 간사장 국회대책위원장 수석부위원장 등 3명이 모여 회의 중이다. 간사장은 아베 장관의 아버지, 국회대책위원장은 현재는 민주당으로 당을 바꾼 와타나베 의원, 수석부위원장은 당시 와타나베 의원이 ‘고이즈미 군’이라고 불렀던 현재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깜짝쇼의 대가인 고이즈미 총리도 이번 민주당 인사에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와타나베 의원은 올해 일흔셋. “어제 일도 가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그가 불꽃 튀는 여야 격전장의 현장감독으로 불려 나온 사연은 이렇다.

나가타 히사야스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6일 국회에서 한 통의 e메일 내용을 폭로했다. 주가 조작 혐의로 구속된 호리에 다카후미 라이브도어 전 사장이 지난해 자민당 간사장의 차남에게 3000만 엔을 보내도록 직원에게 지시한 내용이다. 하지만 e메일은 며칠 만에 가짜로 밝혀졌다.

그러자 민주당에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한 건에 눈이 멀어 성급하게 폭로극을 벌인 37세 나가타 의원의 치기(稚氣), 밀어붙이기 일변도로 사태를 수습할 수 없는 지경까지 키워 버린 43세 마에하라 세이지 대표의 미숙함이 모두 도마에 올랐다.

민주당을 ‘대학 서클’ ‘어린이학교’로 비꼬는 말도 많았다. 한 자민당 의원은 “정권 교체를 들먹이기 전에 먼저 어른이 돼라”고 했다. 와타나베 의원은 e메일을 평생 써 본 적도, 구경해 본 적도 없다. 일흔셋의 고령인 그를 ‘e메일 정국’을 헤쳐 갈 구원투수로 세운 것이다.

일본을 놀라게 한 역(逆)세대교체는 올해 초에도 있었다. 많은 일본 국민은 호리에 전 라이브도어 사장이 구세대로부터 일본을 접수할 신세대의 기수라고 믿었다.

그 ‘호리에 혁명’이 한낱 주가조작극으로 막을 내린 직후, 1월 24일 밤 라이브도어 신임사장 기자회견에 등장한 이는 예순의 히라마쓰 고조 씨였다. 벤처업계에서 60세가 대체 어떤 나이인가. 호리에 어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60세에 상장회사를 경영하는 것이 가능한지 궁금하다.’ 나이가 너무 많으니 집에서 쉬라는 뜻이었다.

일본의 ‘무서운 아이들’이 구세대에게 보내고 있는 구조 요청의 정체는 무엇일까.

반쯤은 규칙과 경륜에 의해 다듬어지지 않은 패기는 나라를 어지럽히고, 나를 망치는 흉기가 된다는 반성일 가능성이다. 나머지 반은 매를 피하는 데는 할아버지 등 뒤만큼 안전한 곳이 없다는 약삭빠른 방어 본능일 것 같다.

회초리가 눈앞에서 사라지면 악동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할아버지를 옆으로 밀쳐 낼지 모른다. 다만 이 점은 분명하다. 미숙함과 무모함을 드러낸 신세대에 대한 일본 국민의 실망이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이다.

갓 잡은 생선에서 발라낸 회는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지만 굴비는 말라비틀어지고 여기저기 때도 묻어 있다. 그러나 먼저 상하는 쪽은 굴비가 아니라 생선회다. 한국에 386정권이 갓 들어선 3년 전 한 공무원이 예언하듯 들려줬던 말이다. 반면 지난해 6월 청와대 브리핑에는 이런 자화자찬이 보인다. ‘아마추어일수록 구태와 시류에 덜 물들어 태도가 공평무사하다. 오히려 아마추어가 희망이다.’

우리 국민은 지금 어느 쪽 말에 더 공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천광암 도쿄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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