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황유성]후진타오시대 더 심해진 여론조작

  • 입력 2006년 3월 16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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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앙선전부 업무량이 2, 3년 전에 비해 몇 배 늘었다고 한다. 야간작업은 다반사고 휴일도 제대로 쉬기 힘들다더라.”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에 친구를 둔 베이징(北京)의 한 지인이 14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끝난 뒤 넌지시 건넨 얘기다.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올해 전인대에서도 어김없이 현 지도부에 대한 찬사와 새로운 구호가 관영 언론에 소개됐다. 그 배후에 당 중앙선전부가 있음은 물론이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4일 언급한 ‘사회주의 8대 영욕관(榮辱觀)’은 이번 전인대 기간 최대의 ‘작품’이었다. 조국을 사랑하고 인민에 봉사하며 힘써 노력하는 것은 영광이고, 조국에 해를 끼치고 인민을 배신하며 교만 방탕한 것은 수치라는 진부한 도덕론이었다.

관영 언론들은 후 주석의 발언 사흘 뒤 무슨 새로운 교시라도 발견한 양 호들갑을 떨었고, 저우지(周濟) 교육부장은 13일 후 주석 발언좌담회를 열고 그의 연설을 교과서에 올리겠다고 공표했다. ‘용비어천가’가 따로 없다.

흔히 공산당은 조직과 선전의 양대 지주에 의해 지탱된다고 한다. 공산당 일당체제의 중국에서 이를 실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국인들조차 관영 신문을 ‘동정(動靜) 신문’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권력의 핵심인 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의 동정이 서열에 따라 매일 1, 2면을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봄철 전인대나 가을 당 대회 등 정치의 계절에는 지도부의 언행에 대해 제호만 다를 뿐 제목은 물론 사진까지 똑같이 배열해 나중에는 어느 신문을 보았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특히 지도자의 교체기에 선전 기능은 극대화된다. 전임자와 차별화되는 새 지도자의 이미지 창출과 상징 조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후 주석은 2002년 12월 총서기 승계 후 첫 공식 활동으로 마오쩌둥(毛澤東)이 베이징을 함락하기 전 ‘인민 중시론’을 강조했던 허베이(河北) 성 시바이포(西柏坡)를 찾았고 관영 언론들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그는 당시 새 지도부의 정책 목표인 ‘전면적인 샤오캉(小康·중진국 수준)사회 건설’을 위해 덩샤오핑(鄧小平)과 장쩌민(江澤民)으로 이어지는 전임자들이 아니라 ‘마오쩌둥의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후 주석에 대한 새 이미지 창출 작업은 국가주석 승계 이듬해인 2004년부터 본격화됐다. 각 부문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과학적 발전관’, 인민의 권리와 이익을 앞세우는 ‘인본주의(이인위본·以人爲本)’, 계층과 지역 간 공동 발전을 지향하는 ‘조화로운 사회(화해사회·和諧社會) 건설’ 등이 숨쉴 틈 없이 소개됐다.

또 지난해 1월부터 ‘당 선진성(先進性) 교육’이라는 선전교육 활동을 통해 후 주석의 새 통치 이념을 전국 공산당원들에게 집중적으로 전파했다.

새 지도자에 대한 이미지 창출 작업은 언론의 다양한 목소리를 억제하는 대신 정제된 여론을 전파해야 한다. 그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 중앙선전부의 열평조(閱評組)라는 조직이다. 열평조는 하루 두 차례씩 신문열평이라는 검열 보고서를 통해 언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2003년 진보 언론인 난팡두스(南方都市)보의 정간과 지난해 사회 부조리에 대한 고발 기사를 실어온 신징(新京)보의 편집국장 해고, 최근 중국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를 다룬 중궈칭녠(中國靑年)보의 주간 부록 빙점(氷點) 정간 등의 배후에는 열평조가 있었다.

후진타오 시대 들어 여론 조작과 언론통제 활동이 더 심해졌다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후 주석이야말로 진정한 공산주의자다. 중국의 본질을 알려면 관영 언론이 만들어낸 각색된 이미지를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황유성 베이징 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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