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팔레스타인 가족 ‘이스라엘軍과 동거’ 기막힌 사연

  • 입력 2005년 10월 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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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릴 바시르 씨(왼쪽에서 세 번째) 가족의 단란한 모습. 바시르 씨의 자녀 8명 중 3명만 보인다. 지난해 등에 총을 맞은 유수프 군(15)이 사진 속에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사진 출처 뉴스데이닷컴
카릴 바시르 씨(왼쪽에서 세 번째) 가족의 단란한 모습. 바시르 씨의 자녀 8명 중 3명만 보인다. 지난해 등에 총을 맞은 유수프 군(15)이 사진 속에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사진 출처 뉴스데이닷컴
이스라엘이 지난달 가자지구에서 완전히 철수한 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되찾은 땅에 입을 맞추며 환호했다.

데이르엘발라에 사는 카릴 바시르(54) 씨는 누구보다도 큰 감격을 맛보았다. 5년 만에 자기 집을 ‘온전하게’ 되찾았기 때문. 81세 노모부터 5세의 딸까지 11명의 식구가 거실로 내몰린 채 이스라엘군과 동거해야만 했던 바시르 씨의 기막힌 사연을 영국 일간 가디언이 4일 소개했다.

5년 전 이스라엘군은 바시르 씨의 집에 들이닥쳐 새로운 구획이 정해졌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군인들은 거실을 ‘A구역’으로 지정한 뒤 바시르 씨 가족은 앞으로 거실에서만 지내야 한다고 못 박았다. A구역은 팔레스타인 당국이 통제하는 구역이라는 뜻.

1층의 침실, 부엌, 화장실은 이스라엘군의 보안통제구역인 ‘B구역’으로 분류됐다. 이스라엘군이 우선 사용권을 가졌고 바시르 씨 가족이 이곳을 지나거나 이용하기 위해선 일일이 군인들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군인들은 ‘C구역’인 2층과 3층은 이스라엘 군 당국의 작전 구역으로 이곳에 들어서면 사격을 가하겠다고 가족들을 위협했다. 군인들은 옥상에 기관총을 설치했다.

유대인 정착촌인 크파르다롬에서 불과 20m 떨어진 곳에 집을 가진 탓에 빚어진 기막힌 동거가 이때부터 시작됐다.

바시르 씨의 부인은 “화장실에 갈 때도 군인과 동행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부엌으로 가는 길에 들여다본 침실에는 이스라엘군들이 벌거벗은 채 뒹굴고 있었다. 초등학교 교장인 바시르 씨는 퇴근 때마다 현관에서 바지까지 내린 채 몸수색을 당했다.

300년 동안 대를 이어 살던 집은 군인들에 의해 철저히 짓밟혔다. 야자수 170그루가 심어져 있던 과수원은 황무지가 돼 버렸고 군인들은 바시르 씨가 키우던 당나귀도 죽여 버렸다.

두 아들이 군인들의 총질에 부상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지난해 총을 맞은 유수프(15) 군은 총알이 척추를 살짝 비켜간 덕택에 전신 마비는 피했지만 1년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총알 제거 수술을 잘못하면 척추를 건드릴 가능성이 높다는 의사들의 판단에 따라 유수프 군은 등에 총알이 박힌 채 살고 있다.

그는 “아들의 등에 박힌 총알이 우리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말했다. 총알을 제거하자니 위험하고, 그렇다고 그대로 놔두자니 더 큰 위험이 생길 수도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자신들의 불안한 현실과 똑같다는 얘기였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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