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3분의2 독주’ 시작… 韓-中과 거리 더 벌어질것"

  • 입력 2005년 9월 13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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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실시된 일본 중의원 총선거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 등 여당이 개헌선을 넘어서는 327석을 차지해 기록적인 대승을 거두자 일본 정국을 보는 인접국의 시선도 복잡해지고 있다. ‘고이즈미 일본호(號)’는 어디로 갈 것인가. 본보 ‘세계의 눈’ 고정 필자인 후지와라 기이치(藤原歸一) 도쿄대 교수가 진단하는 ‘9·11 이후의 일본’을 긴급 기고로 소개한다.》

고이즈미 총리의 국회 해산은 극적인 성공을 거뒀다. 자민당과 공명당을 합해 여당이 중의원 의석의 3분의 2(320석)를 뛰어넘는 의석을 차지한 이번 승리는 전후 일본 정치의 역사에서 없었던 일이다.

3분의 2라는 숫자의 의미는 크다.

우선 참의원 의결의 의미가 사라지게 됐다. 양원제를 택한 일본에서는 참의원이 부결시킨 법안은 중의원 출석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얻지 못하면 폐기된다. 역으로 중의원에서 3분의 2가 넘는 세력이 있으면 참의원이 부결시킨 법안도 중의원 의결만으로 통과시키는 게 가능해진다.

지난번 우정민영화 법안은 참의원이 부결시켰지만, 이제 고이즈미 총리는 중의원만의 찬성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게 됐다.

참의원이 의결의 의미를 잃게 됨에 따라 정당정치의 틀도 바뀔 것이다. 자민당이 공명당과 연립 정권을 구성한 이유는 참의원에서 다수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참의원의 의미가 퇴색하면 연립의 의미도 줄어든다. 지금까지는 공명당의 뜻을 배척한 채 정책을 입안하기가 어려웠지만 앞으로는 자민당이 무언가를 결정하면 공명당은 자민당을 따라야 할 처지가 될 것이다. 공명당이 여당으로 남으려면 자민당과의 연립이 필요하지만 자민당에는 공명당이 더는 필요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상당수 민주당 의원들이 자민당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크다. 본래 민주당 내에는 우정민영화와 금융자유화 등의 정책에서 자민당 의원보다 더 고이즈미 총리의 방침에 가까운 의원들이 많았다. 정권을 차지할 전망도 별로 없는 정당에 남아 있기보다는 같은 정책을 추구하는 총리와 함께 행동하는 편이 합리적 선택이란 점은 분명하다.

중의원에서 3분의 2 이상 의석을 보유하는 것은 앞에서 소개한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중의원의 3분의 2 찬성을 얻을 수 있으면 헌법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일관되게 개헌에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번 선거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파벌로 고이즈미 총리가 소속된 모리파는 자민당 내에서도 개헌에 적극적인 정치인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민당은 이미 헌법 개정안 초안을 확정한 바 있다. 이 초안이 11월 국회에 상정되면 고이즈미 정권의 임기 중에는 실현되지 않더라도 개헌이 현실 정치 일정에 공식 등장하게 된다.

우정민영화에만 관심이 쏠린 이번 선거에서 대외정책은 거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선거는 일본의 대외정책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본 외교의 과제는 미국과의 동맹과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느냐는 것이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대미관계에 일방적으로 기울어져 왔다는 점에서 특이한 정권이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서 지금껏 해 온 것보다 더 미국의 힘에 의지하려는 일본과 미국의 힘이 강할수록 미국을 다국간 협의의 장으로 이끌어 내려는 한국 및 중국과의 사이에 거리가 생겼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가 한국, 중국과의 거리를 더욱 벌려 놓을 것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자민당의 압도적인 승리는 이런 경향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전통적 우익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인물이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실질적으로 자민당을 지배하게 된 모리파에는 전통적 우익에 가까운 의원이 많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야당은 물론 연립여당인 공명당도 반대했지만 이제 그런 반발은 정치적으로 무시해도 좋은 존재가 됐다. 한국,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복원하는 것보다 일본의 상황을 강하게 주장하는 게 우선시될 것이다.

자민당에 한 표를 던진 것이 이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일본 국민이 자각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영향이 분명해졌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 후지와라 도쿄大교수 특별기고 일본어 원문

▼후지와라 기이치(藤原歸一)▼

△1956년생

△도쿄대 법학부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미국 예일대 대학원

△미국 우드로 윌슨 인터내셔널 센터 펠로

△일본 지바대 조교수

△현재 도쿄대 법학부 교수

△국제정치, 비교정치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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