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잔혹 공권력’ 60년만에 참회

  • 입력 2005년 9월 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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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한 흑인 여성 르네 베이커(당시 44세) 씨는 이혼 후 공장 일용직 월급으로 근근이 세 아이를 키우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직장 상사였던 한 백인 남성이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수년에 걸쳐 성관계를 요구했다. 당장 먹고살 방도가 없었던 이 여성은 이에 응해야 했다. 하지만 계속된 성적 학대와 폭력을 견디다 못한 그는 남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살인혐의로 기소된 그에게 주 법원은 단 하루 만에 재판을 끝내고 사형판결을 내렸다. 베이커 씨는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배심원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는 전기의자에 앉혀져 사형을 당했다. 미국 조지아 주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로부터 60년 후. 주정부는 졸속재판과 잔혹한 사형집행의 과오를 인정하고 숨진 베이커 씨의 자손들에게 사과했다. 베이커 씨에 대해서는 사면을 공식 선언했다. 공권력의 보기 드문 ‘참회’ 사례다.

베이커 씨는 같은 공장의 상사였던 백인 어니스트 나이트 씨와 다투던 중 살인을 저질렀다. 베이커 씨는 정당방위를 호소했지만 12명의 백인 남성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에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다. 주정부에 의해 임명된 국선 변호인은 베이커 씨를 위한 증인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심리 단 하루 만에 사형을 선고받은 베이커 씨는 남자 죄수들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옮겨졌고 1945년 3월 5일 전기의자로 사형이 집행됐다. 그는 조지아 주에서 전기의자로 사형당한 유일한 사형수였다.

베이커 씨의 가족과 인권운동가들은 재판 과정의 불공정성과 비인간성을 끊임없이 지적하며 베이커 씨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당시 재판을 소재로 한 연극 ‘누가 레나를 위해 노래하나(Who will sing for Lena?)’는 미국 영국 등에서 무대에 수차례 올려졌다. 많은 이들이 베이커 씨의 무덤을 찾았다.

이들의 호소가 받아들여지는 데 60년이 걸렸다. 조지아 주 사면위원회는 베이커 씨의 재판과 사형 집행에 ‘중대한 과오(a grievous error)’가 있었다며 사과와 함께 사면을 결정했다. 베이커 씨의 유족들은 사면 결정을 받은 직후 피해자인 나이트 씨 유족에게서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받았다. 이 편지 한 통은 60년 동안 이어진 두 가족 사이의 원한을 지우고 마음의 평화를 심어주는 씨앗이었다.

베이커 씨의 손자뻘인 찰스 맥엘빈 씨는 “진실이 밝혀진 만큼 할머니가 편히 쉬었으면 한다”며 “묘소도 아무도 모르는 조용한 곳으로 옮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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