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범식]페레스트로이카 20년의 교훈

  • 입력 2005년 7월 28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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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53세로 소련 지도자가 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정치 민주화, 경제 시장화, 사회 개방화, 신사고 외교로 요약되는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했다.

하지만 이 개혁은 1991년 8월 보수 쿠데타를 계기로 막을 내리고 소련은 해체된다. 이후 그는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해야 했다. “행복한 개혁자란 없는 법이다”라고 말해 온 그는 1990년대 국민에게 ‘나라를 말아먹은 존재’ ‘러시아 잃어버린 10년 고통의 원흉’이었다. 하지만 2001년 필자는 러시아 시민들과 인터뷰하는 중에 그에 대한 달라진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은 ‘비록 힘들었지만 그의 개혁이 러시아가 거듭나기 위한 출발점’이었음을 인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고르바초프로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개혁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고르바초프가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강조한 점은 바로 ‘성공을 위한 개혁의 시간성’이다. 개혁을 구상하고 추진하는 세력은 기회가 왔을 때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지만 동시에 개혁은 ‘점진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혁의 속도를 그 사회가 견디지 못하면 개혁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을 뿐더러 많은 사회적 자산을 파괴하게 된다.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에는 민감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되, 개혁의 속도는 그 사회가 소화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기에 극단적으로 분열된 러시아가 얻은 것은 국제사회의 냉소와 국제적 지위의 하락뿐이었다.

또 다른 교훈은 ‘발전을 위한 개혁의 필연성’이다. 개혁은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에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지만 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한때 소련과 중국 개혁이 비교되면서 중국의 부분적 점진적 개혁이 소련의 전반적 급진적 개혁보다 더 낫다는 평가가 있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가 지적하고 있듯이 오늘날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화평굴기(和平굴起)를 꿈꾸는 중국의 개혁이란 온전한 것이 아니다. 정치개혁도 어떤 식으로든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발전을 위해 정치개혁을 유보하자는 주장은 반쪽 개혁을 미화하는 기만이다.

또 ‘성공적 개혁의 리더십’에 대한 교훈도 있다. 지도자의 유형에는 기존질서 유지에 관심이 있는 관리적 지도자, 그 사회의 체제를 변화시키려는 혁명적 지도자, 그리고 사회의 체제와 문화도 함께 변화시키려는 개혁적 지도자가 있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체제의 변화를 정치질서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문화적 관점에서도 이해하려 했고, 대화를 통한 새로운 집단 정체성의 형성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이때 지도자에게 ‘언술(rhetoric)’은 매우 중요하다. 지도자의 이념과 구상은 당면 사회문제의 해결에 적절해야 하며, 동시에 전통적 정치문화 내에서도 온당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즉 개혁적 지도자는 창조적 파괴와 더불어 전통 가치의 발굴에도 능해야 한다. 진정한 개혁을 위해 지도자는 동조세력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적까지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올해 73세를 넘긴 고르바초프가 정치적으로 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의 말은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힘 있게 들린다. 시류와 여론은 가혹했지만 이제 그는 신념에 따라 일관되게 살아온 청렴한 정치원로로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은퇴한 지 10여 년이 지나 그 개혁의 공과(功過)는 역사적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현재도 꾸준한 활동을 통해 그는 눈물 흘리며 씨 뿌렸던 실패한 개혁자가 거두는 행복의 결실을 맛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소망처럼 ‘스쳐 지나가는 역사의 소맷자락이라도 잡을 수 있었던’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신범식 인천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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