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미래와 도전]<9>아시아에서 본 한국

  • 입력 2005년 4월 13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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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휴대전화요∼.”

지난달 21일 베트남 국립 외국어대 한국어과 3학년 학생 30명을 모아놓고 “한국 하면 떠오르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동시에 나온 대답이었다. 요즘 삼성전자의 휴대전화는 베트남 젊은이들에게 첨단을 상징하는 ‘코드’다. 지난해 시장점유율은 31%로 노키아(49%)에 이어 2위. 노키아가 비교적 싼 가격대에서 잘 팔리는 반면 삼성 휴대전화는 400달러대의 고가(高價) 제품 판매가 가장 활발하다.

#‘LG전자, 제품 가격 인상하다.’

지난달 22일 인도 최대 일간지인 ‘타임스 오브 인디아’를 포함해 인도의 주요 신문들은 일제히 1면이나 2면 주요 기사로 LG전자 인도법인의 가격 인상 소식을 상세하게 전했다. LG가 가격을 인상하면 다른 업체들도 따라 움직일 것이라는 예측에 따른 것이다. 인도 가전시장에서 LG전자의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 현지에 뿌리내린 한국기업들

세계적인 인도 제약회사인 시플라의 아마르 룰라 사장은 취재팀에 자신의 삼성전자 휴대전화를 보여주며 ‘최고의 휴대전화’라고 치켜세웠다. 아시아 각국의 현장에서 확인한 한국 기업의 활약은 취재팀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한국기업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삼성전자의 중국 사업부문 매출(중국 내수시장과 해외수출 포함)은 1999년 10억 달러에서 지난해 122억 달러로 치솟았다. 중국 내 고용인원은 4만 명이 넘는다. 삼성전자는 2010년 중국 내수시장에서만 25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LG전자는 지난해 인도에서 13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LG전자의 인도시장 점유율은 전자레인지(40.9%), TV(23.5%), 에어컨(35%), 냉장고(25%) 등이다. 2010년 인도 시장에서 ‘매출 100억 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중국 합작기업인 베이징현대차는 올해 1, 2월 연속으로 중국시장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중국시장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해 온 폴크스바겐과 도요타 혼다를 모두 제쳤다.

현대차는 인도에서도 1998년 경차 상트로(국내 모델명 비스토)를 시작으로 액센트 쏘나타를 잇달아 생산하면서 마루티스즈키, 타타모터스와 함께 자동차 분야 ‘빅3’에 포함됐다. 상트로는 인도 중산층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차. 현대차는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에 가장 많은 세금을 납부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 예전 같지않은 한국 따라 배우기

인도의 압둘 칼람 대통령은 ‘인도, 2020년 비전’이라는 저서 곳곳에서 한국을 언급하면서 “인도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레이시아는 마하티르 빈 모하맛 전 총리 시절부터 한국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동방정책(Look East Policy)이 대표적인 사례.

취재팀은 아시아 각국에서 한국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 기업가개발부 망소르 사드 부국장은 “한국은 이미 아시아에서 저만치 앞서간 나라”라며 “말레이시아 발전 전략도 한국이나 일본으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따라 배우기’가 예전 같지는 않다. 한국의 ‘전투적 노동운동’이 한국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거나, 한국이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면서 ‘근성’이 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중국에서 만난 한 한국기업인은 익명을 전제로 “중국 국무원 대외경제무역위원회에 ‘한강의 기적’을 연구하는 한국 소조(팀)가 있는데, 이들이 얼마 전 ‘더 이상 한국의 경제 전략에서 배울 게 없다’고 선언했다”고 전해줬다.

최근 무섭게 성장하는 인도에는 투자 이익을 찾아 세계 각국의 금융회사들과 돈이 몰려들고 있지만 한국의 금융회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인도의 한 금융인은 “한국 금융회사들은 뭐하고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실력과 국제경험이 부족한 한국 금융업의 낙후된 경쟁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 현지기업 저가공세에 흔들

아시아 각국이 미래를 향한 국가전략을 세워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함에 따라 한국이 주춤하면 주도권 경쟁에서 소외될 것이라는 우려도 들었다. 현지기업들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한국기업을 위협할 수 있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 가전시장이 대표적이다. 하이얼, 하이신, TCL 등 세계적 규모를 갖춘 중국기업들이 낮은 가격을 무기로 경쟁에 뛰어들면서 한국기업을 비롯한 외국기업이 고심하고 있다. 냉장고와 에어컨의 중국 시장점유율 1위는 이미 하이얼로 바뀌었다.

휴대전화 부문에서도 중국기업들의 저가(低價) 공세로 외국기업들의 채산성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 액정표시장치(LCD) TV,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TV 등 첨단기술을 필요로 하는 제품군에서도 중국 현지 업체들이 상위권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 PC업체인 레노버는 IBM의 PC부문을 인수해 이미 글로벌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인도 자동차 시장도 대우상용차를 인수한 인도의 타타모터스가 내수시장 공략을 본격화하면서 해외업체와의 경쟁이 치열하다. 타타모터스는 1990년대 중반 승용차 시장에 처음 진출했을 때만 해도 품질 문제로 곤란을 겪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품질이 개선되고 있어 인도 내수시장에서 현대차의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했다.

● 치열해지는 아시아 허브 경쟁

금융 물류 기업유치 등의 중심이 되는 ‘아시아 허브 경쟁’에서도 한국은 홍콩과 싱가포르 등 경쟁국에 비해 유리하지 않다. 홍콩에서 법인등록에 필요한 것은 대표이사와 주주의 이름과 주소가 전부다. 최소자본금은 1홍콩달러(약 130원)에 불과하다. 현재 홍콩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은 사상 최대인 3600여 개. 홍콩의 오재훈(吳在勳) 변호사는 “법인 설립과정이 너무 간편해 ‘정말 필요한 게 그것밖에 없느냐’고 재차 확인하는 한국인이 많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아시아 각국을 취재하면서 현지의 기업인들로부터 “한국이 진짜로 ‘허브 경쟁’에 나서려면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 실천을 통해 매력적 투자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을 많이 들었다.

▼한국에 대한 인상은▼

아시아 각국에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대체로 높았다. 가전제품과 자동차, 휴대전화 등을 중심으로 한국기업의 강세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한 취업사이트가 발표한 ‘2004년 중국 대학생이 꼽는 인기 기업’ 순위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중국 국내외 기업을 통틀어 각각 11위와 28위에 올랐다.

‘한류(韓流)’로 대표되는 한국의 문화산업도 아시아인들의 대한(對韓) 인식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동남아시아에서 한국 음악은 이미 ‘주류(主流) 음악’이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MTV아시아의 미샬 바마 부사장은 “요즘 한국의 대중음악은 일본과 거의 동등한 수준”이라며 “일본이 현 상태에 머무른다면 한국이 추월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적잖은 베트남인들은 한국을 ‘기회의 땅’으로 여기고 있었다. 하노이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농촌 마을 땀꼭을 방문했을 때 만난 한 전문대생은 “제발 저를 한국으로 데려가 달라”며 매달리기도 했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중국이나 동남아에서는 “일부 한국인이 돈이 좀 있다고 너무 거들먹거린다”는 비판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좀 과장된 측면도 있겠지만 한국 관광객을 ‘섹스 관광’과 연결시켜 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한류 효과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처럼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보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대장금’은 홍콩 대만 등 대체로 중화권에서만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드라마에 중국과 관련된 역사가 나오는 데다 중국인들의 큰 관심인 먹을거리 문화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별취재팀명단▼

▽경제부=권순활 차장

공종식 기자

차지완 기자

▽국제부=김창혁 차장

이호갑 기자

황유성 베이징특파원

박원재 도쿄특파원

▽사회부=유재동 기자

▽교육생활부=길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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