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군 학살사건 잊었나”… 동유럽版 ‘역사 바로세우기’

  • 입력 2005년 3월 27일 19시 12분


제2차 세계대전 승전 60주년을 맞은 러시아는 60여 개국 정상을 초청한 가운데 5월9일 모스크바에서 거행할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옛 소련의 승전을 계기로 소련권에 강제 편입돼 고통을 받았던 주변국들은 “소련의 승전이 우리에게는 불행의 시작이었다”며 행사 참석을 거부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최근 잇따른 주변국의 이탈로 약화된 외교적 영향력을 이번 행사를 통해 회복해 보겠다는 러시아의 속셈이 오히려 역풍에 휘말린 것이다.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6일 “5월 8일 모스크바에 들르긴 하겠지만 9일의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축하행사에 참석하기 힘든 과거사가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 독재자 스탈린이 집단농장을 만들기 위해 우크라이나에서 고의로 기아를 일으켜 800여만 명을 굶어 죽게 한 참극은 지금도 우크라이나인들의 뇌리에 생생하다.

기념식에 참석키로 한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은 “러시아로부터 과거사에 대한 사죄도 못 받고 왜 거길 가느냐”는 거센 반대 여론에 부딪쳐 있다.

1940년 나치독일과 밀약을 맺고 폴란드를 침공해 동부지역을 점령한 소련은 포로로 잡은 장교와 사회지도층 인사 2만여 명을 1940년 러시아 서부의 카틴 숲에서 학살했다. “폴란드가 다시는 독립국으로 일어설 수 없도록 만들라”는 스탈린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소련은 이 사건을 나치독일군이 저지른 것이라고 잡아떼다가 1989년에서야 일부 시인했다. 그러나 이달 초 러시아 군검찰이 다시 “카틴 사건은 학살 사건이 아니다”고 밝혀 폴란드의 반발을 샀다.

2차 대전 당시 소련에 강제 합병된 발트3국 중 라트비아의 바이라 바이크-프레이베르가 대통령만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감안해 참석할 예정.

그러나 리투아니아의 발다스 아담쿠스 대통령은 “소련 시절 리투아니아 전체 인구의 10분의 1이 투옥되거나 살해되는 등 ‘5월 9일’은 재앙의 시작이었다”며 불참 이유를 분명히 했다.

독일의 유력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는 “러시아는 과거 스탈린이 저지른 잘못을 솔직히 인정해도 아무 것도 잃어버릴 게 없다”며 “승전 자축에 앞서 과거사 청산부터 하라”고 최근 촉구했다.

옛 소련과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악연을 맺은 나라들

쟁점 과거사모스크바 승전기념행사 참석 여부
폴란드1939년 나치독일과 소련이 분할 점령1940년 소련군의 키틴숲 학살사건2차대전 후 소련 위성국화반대여론에도 크바시니에프스키 대통령 참석외무부, “과거 잊은 것 아니다”의회, 키틴숲 학살사건 진상규명 요구
우크라이나1932∼33년 스탈린이 집단농장 추진,인위적 기아정책으로 800여만명 아사유셴코 대통령 불참
리투아니아1940년 소련에 강제합병나치독일 패전 후 소련에 다시 편입아담쿠스 대통령 불참
에스토니아1940년 소련에 강제합병루텔 대통령 불참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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