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15년 독재종식 ‘레몬혁명’ 완성

  • 입력 2005년 3월 25일 02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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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련권을 휩쓸고 있는 시민혁명 바람이 결국 인구 500만 명의 중앙아시아 소국 키르기스스탄에까지 몰아쳤다. 15년 동안 장기 집권하며 철권통치를 계속해 온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이 24일 국외로 망명, 하야함으로써 키르기스스탄은 지난 2년 새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에 이어 민중의 힘으로 정권이 교체된 3번째 옛 소련 국가가 됐다. 서방 언론이 이름 붙인 대로 ‘레몬(키르기스스탄의 상징) 혁명’이 완성된 것이다.》

아카예프 정권의 붕괴를 재촉한 반정부 시위의 발단은 지난달 실시된 총선 1차 투표와 13일의 결선 투표 결과.

의회 의석 75석 중 야당은 겨우 6석을 얻었다. 국제선거참관인단과 야당은 전국적으로 조직적인 부정선거가 자행됐다고 주장했고 지난주 남부지역에서부터 항의시위가 시작됐다.

아카예프 대통령은 지방정부 청사가 점거되는 등 시위가 격화되자 23일 내무장관과 검찰총장을 전격 해임하는 등 해결에 나섰으나 역부족이었다.

24일 수도 비슈케크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는 “아카예프는 하야하라”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정부청사를 포위했고 별다른 저항 없이 청사를 장악했다. 7층 대통령 집무실에 아카예프 대통령은 없었다. 시위대는 아카예프 대통령의 사진과 서류 등을 건물 밖으로 내던졌다.

시위대는 곧바로 국영방송국을 접수하고 교도소도 점거해 수감 중이던 야당 지도자 페리스 쿠로프 씨 등을 석방했다. 시위를 이끌고 있는 야당 지도부는 “총선을 다시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야당 세력이 일단 사태를 장악한 것으로 보이나 뚜렷한 지도자가 없어 그루지야나 우크라이나의 경우와 달리 혼란이 더 커지고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외신들은 야당 측이 일단 풀려난 쿠로프 씨를 중심으로 통합을 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쿠로프 씨는 석방 후 방송을 통해 “아카예프 대통령 일가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밝히며 수습에 나섰다.

물리학자 출신의 아카예프 대통령은 1990년부터 키르기스스탄을 통치해 왔다. 그는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하는 등 경제 활성화에 주력했으나 전 인구의 50% 이상이 절대빈곤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사태도 경제 실패가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특히 2003년 대통령의 권한을 확대하는 국민투표 이후 야당은 아카예프 대통령이 종신 집권을 꾀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이번 총선에서 32세의 딸과 29세의 아들이 의원에 당선되면서 족벌정치에 대한 비난 여론까지 거세졌다.

한편 러시아는 키르기스스탄에 주둔 중인 러시아군에 이번 사태에 개입하지 말고 중립을 지킬 것을 지시했다.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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