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초고속 날갯짓 사람 심장운동 닮았다

  • 입력 2005년 1월 27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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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날갯짓 실험장치미국 연구진이 파리 날개의 근육 구조를 밝히기 위해 고안한 실험장치. 파리를 매달고 방사광가속기에서 나온 X선으로 쪼이면 아래 검출장치에 날개 근육 단백질의 변화양상이 감지된다. 보통 근육은 액틴과 미오신이라는 단백질로 구성되는데 미오신에 붙은 미세돌기가 액틴을 잡아당길 때 수축이 일어나고, 액틴과 떨어지면서 이완이 생긴다. 이에 비해 파리는 근육이 이완할 때 미오신의 미세돌기가 액틴에 붙어 있고 미오신 길이가 약간 늘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파리날갯짓 실험장치
미국 연구진이 파리 날개의 근육 구조를 밝히기 위해 고안한 실험장치. 파리를 매달고 방사광가속기에서 나온 X선으로 쪼이면 아래 검출장치에 날개 근육 단백질의 변화양상이 감지된다. 보통 근육은 액틴과 미오신이라는 단백질로 구성되는데 미오신에 붙은 미세돌기가 액틴을 잡아당길 때 수축이 일어나고, 액틴과 떨어지면서 이완이 생긴다. 이에 비해 파리는 근육이 이완할 때 미오신의 미세돌기가 액틴에 붙어 있고 미오신 길이가 약간 늘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하찮아 보이는 파리의 날갯짓에 대한 연구가 세계적인 과학전문지에 소개돼 화제다. 미국 일리노이공대, 캘리포니아공대, 버몬트대 공동 연구진은 파리의 날갯짓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 영국에서 발행되는 ‘네이처’ 온라인판 20일자에 게재했다. 실험에 동원된 장비는 어마어마하다. 둘레가 1km에 달하는 도넛 모양의 거대한 원형 방사광가속기가 사용됐다. 내부에서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켜 원의 접선방향으로 X선을 얻어냈다.

연구진은 이 X선을 다름 아닌 파리의 날개에 쪼였다. 목표는 파리가 1초에 200회에 달하는 날갯짓을 할 수 있는 비결을 찾는 것.

파리를 포함한 곤충의 날갯짓은 오랫동안 과학자들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다. 등에는 1초에 자그마치 1000회가 넘게 날개를 친다. 또 모기는 600회, 꿀벌은 190회에 달한다. 상상하기 어려운 빠른 동작이다. 과연 이들의 날개에 어떤 장치가 만들어져 있는 것일까.

연구진은 파리 날개에 존재하는 근육이 독특한 구조와 기능을 갖췄을 것이라 생각했다. 근육에는 액틴과 미오신이라는 두 종류의 기다란 단백질이 있다. 일반적으로 미오신 표면에 잔뜩 붙어 있는 미세한 돌기가 액틴을 잡아끌면 근육은 움츠러들고(수축) 액틴에서 떨어지면 액틴은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근육이 늘어난다고(이완)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번거로운 방식으로는 파리처럼 빠른 날갯짓을 실현할 수 없다.

연구진은 파리의 날개 근육을 ‘해부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머리카락 10만분의 1 굵기인 나노미터(nm) 수준의 단백질을 직접 들여다볼 수는 없는 일. 더욱이 파리가 생생하게 날 때 근육의 움직임을 살펴봐야 확실한 증거를 잡을 수 있다. 그래서 파리의 등을 고정시키고 주변에 공기와 빛을 흘려줌으로써 파리가 자신이 날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날갯짓을 유도한 후 X선을 쪼였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신소재공학과 노도영 교수는 “X선이 날개를 통과할 때 단백질에 부딪히면서 산란되는 패턴을 분석하면 시간에 따른 단백질의 위치변화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연구진은 파리가 날갯짓을 할 때 X선이 어떻게 산란하는지를 촬영해 액틴과 미오신의 움직임을 포착한 것이다.

연구 결과 미오신이 독특한 행동을 보였다. 우선 근육이 이완할 때 미오신의 미세돌기가 액틴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붙어있었다. 또 미오신의 전체 길이가 약간 늘어나 있었다.

연구진은 늘어난 미오신이 가진 탄성에너지 때문에 곧바로 수축이 시작된다고 결론지었다. 마치 스프링을 늘렸다가 손을 뗐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늘어난 스프링에 저장된 탄성에너지가 수축을 일으키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수축된 근육은 자연스럽게 다시 이완된다. 일단 날개의 움직임이 시작되면 기계적인 고속 운동이 쉬지 않고 이어지는 구조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근육운동 메커니즘이 처음 밝혀진 것이다.

그런데 파리의 날갯짓 연구가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 일리노이공대 토머스 어빙 교수는 “수축과 이완을 쉴 새 없이 반복하는 심장근육과 파리의 날개근육이 비슷한 원리로 작동할 것”이라며 “심장근육의 이상으로 생기는 질병의 원인을 찾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파리에 유전자조작을 가해 근육 구조를 변형시킨 후 비정상적인 운동패턴을 분석한다. 이 데이터를 선천성 심장병에 걸린 사람의 심장근육 운동패턴과 비교하면 어떤 유전자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알 수 있다는 생각이다. 잘만 하면 심장박동을 오랫동안 멈추지 못하게 해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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