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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1월 23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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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선거관리위원회는 22일 밤(현지시간) 동부지역에서 몰표를 얻은 빅토르 야누코비치 현 총리(54)가 49.7%를 얻어 빅토르 유슈첸코 전 총리(50)를 3%포인트 차로 누르고 당선이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유슈첸코 후보가 이에 불복하고 대선 승리를 선언한 데 이어 수도 키예프 등 서부지역 지방 의회들이 이에 동조하고 나서는 등 부정선거 시비가 확산되면서 우크라이나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고 있다.
▽확산되는 부정 선거 시비=23일 수도 키예프에서 20여만명이 집회를 갖는 등 전국에서 전날에 이어 수십만명이 참가한 부정선거 항의 시위가 계속됐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이날 오후 비상회의를 소집해 수습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상당수 의원들이 불참해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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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슈첸코 후보는 의회에 출석해 자신이 대통령이라고 선언한 뒤 성경에 손을 얹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할 것”이라고 선서를 했다. 반면 러시아는 야누코비치 새 대통령을 승인한다고 발표했다.
유럽의회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등 서방측 참관인들은 이번 선거가 야누코비치 총리에게 유리하도록 불공정하게 치러졌다고 지적했다.
마레크 시비에츠 유럽의회 참관인단 위원장은 “75%였던 1차 대선 투표율이 2차에서 80%로 높아졌고, 늘어난 5%는 대부분 야누코비치 총리의 텃밭인 동부지역의 표”라며 “이번 대선은 유럽 방식이 아닌 북한 방식의 선거였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측 참관인 테이스 베르만도 “일부 유권자는 40차례 투표를 하는 부정이 저질러졌다”며 “제대로 된 선거명부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부정선거 시비가 확산되자 키예프 리비프 등 6개 도시 의회는 선거 무효와 유슈첸코 후보에 대한 복종을 선언했다.
▽제2의 그루지야 되나=혼란이 거듭되자 부정선거에 항의하다가 시민명예혁명으로 정권이 바뀐 그루지야 사태가 재현되거나, 분리독립 움직임으로 확산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정확히 1년 전인 지난해 11월 23일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전 그루지야 대통령이 선거 부정으로 촉발된 항의 시위 끝에 물러났던 상황이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그루지야 시위대는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의 신임 투표를 겸한 총선에서 부정이 자행됐다며 개표 직후 의사당을 점거했으며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은 20일 만에 사임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의 정치평론가인 유리 코르구뉴크는 “셰바르드나제는 그루지야 전체의 신임을 잃었지만 야누코비치의 지지세력은 국민의 절반이나 되는 등 지지층이 비교적 탄탄하다”면서 “최악의 경우 국가가 둘로 쪼개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민족 이념 갈등 뒤섞인 동서 대결=동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넓은 국토와 인구,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할 때부터 내부 갈등 요인을 안고 있었다.
인구의 18%를 차지하는 러시아계가 밀집한 동부지역은 역사적으로 러시아에 우호적인 반면, 서부지역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와 탈(脫)러시아 정서가 강하다.
이번 선거는 국가 진로를 놓고 대립하는 ‘노선 대결’의 장(場)이었다. 야누코비치 총리는 러시아어를 제2공용어로 삼고 러시아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등 친러 정책과 함께 연금과 공공부문 임금 인상 등 시장경제에서 후퇴하는 정책을 내세웠다.
반면 유슈첸코 후보는 부패청산과 일자리 창출 등 시장경제개혁과 러시아 세력권에서 벗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및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해 우크라이나를 유럽공동체의 일원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주변국 등 외부세력도 가세했다. 러시아는 그루지야에 이어 우크라이나에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야누코비치 총리를 노골적으로 지원했다. 반면 은근히 유슈첸코 후보의 당선을 기대해 왔던 미국과 유럽은 부정선거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며 우크라이나와의 관계 재검토 등 제재 조치 가능성을 경고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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