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되려고 아내를 버려야하나?

  • 입력 2004년 11월 2일 14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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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되려고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

이달 21일 2차 투표를 앞둔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빅토르 유셴코(50) 전 총리가 미국 국적의 부인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는 당초 당선이 유력시되었으나 지난달 31일 치러진 1차 투표에서는 39.15%를 얻는 데 그쳐 빅토르 야누코비치 현 총리(40.12%)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두 후보 모두 과반수를 얻지 못해 2차 투표에서 재대결을 벌이게 됐다.

그러나 유셴코 후보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젊고 개혁적인 이미지로 역전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상대 후보들이 부인인 캐서린 추마첸코(43) 여사의 국적과 전력을 물고 늘어지면서 상황이 급변한 것.

상대 후보들은 추마첸코 여사를 미국 중앙정보부(CIA)의 간첩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CIA의 밀명을 받고 유셴코 후보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결혼까지 했다는 주장이다. 그가 대통령 부인이 되면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식민지나 다름없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에 대해 유셴코 후보 측은 '터무니없는 흑색선전'이라며 억울해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이민의 후예로 시카고에서 태어나 조지타운대학을 나온 추마첸코 여사는 미국 국무부와 백악관 재무부에서 일했지만 CIA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해명이다.

1991년 고국 우크라이나로 돌아와 93년 당시 중앙은행 총재이던 유셴코 후보를 만나 결혼한 그가 여전히 미국 국적을 갖고 있는 것도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선거 직전 서둘러 우크라이나 국적을 신청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결국 자녀들을 데리고 외국으로 나가 선거 기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고초를 겪었다. 이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유셴코 후보는 탈진해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이 공방은 친(親)미와 친러시아 세력 간의 이념 논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주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친미 성향으로 알려진 유셴코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우크라이나의 표심은 현재 동서로 양분되어 있다. 1차 투표에서 러시아와 인접한 동부지역은 야누코비치 후보에게, 유럽과 가까운 서부지역은 유셴코 후보에 몰표를 던졌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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