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여객기 추락 수사]체첸여성의 자폭테러 가능성

  • 입력 2004년 8월 29일 18시 13분


동시 추락한 러시아 여객기 2대 중 TU-154기에 이어 TU-134기의 잔해에서도 폭발물질인 헥소겐이 검출됐다.

러시아 언론은 사망한 승객 중 체첸 여성 2명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면서 이들의 탑승 전 행적을 추적하는 등 수사기관을 앞서가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이번 사건을 아직까지 테러로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채 미적거리고 있어 체첸 대선과 관련, 사건을 축소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용의자 추적=수사당국은 TU-154기 승객 중 아만타 나가예바(27)와 제비르하노바라는 체첸 여성 2명을 용의자로 추적하고 있다.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나가예바가 3, 4년 전 러시아군에 끌려가 행방불명된 오빠의 복수를 하기 위해 사건에 가담했다는 범행 동기까지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기체 잔해에서 나온 헥소겐이 이들 여성의 시신에서 검출됐다고 전했다.

제비르하노바는 정확한 이름을 밝히지 않고 비행기에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범인으로 밝혀진다면 체첸반군이 테러전선에 여성을 앞장세우고 있다는 점이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2002년 10월 모스크바 극장에서 인질사건을 벌인 50명의 체첸 테러범 중에서도 절반이 여성이었다. 온몸에 폭탄을 두르고 자폭조로 나선 여성 테러범들은 모두 사살됐다.

지난해 7월 모스크바 록 콘서트장과 12월 크렘린궁 인근에서 일어난 자폭 테러도 체첸 여성의 범행이었다.

반군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항쟁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하고 러시아 당국은 여성들이 반군의 꾐이나 강요에 못 이겨 테러에 가담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신중한 러시아 당국=24일 사건 발생 직후부터 민간전문가와 언론은 테러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테러를 입증할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대형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일찌감치 ‘체첸반군의 테러’로 몰아세웠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러시아 정부는 25일에는 안전법규 위반이나 조종사의 실수, 기체 결함 등 단순사고 가능성을 흘렸다. ‘이슬람불리 여단’이라는 이슬람 무장단체가 사건을 저질렀다고 밝힌 데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폭탄테러 증거가 속속 밝혀진 28일에도 세르게이 이그나첸코 러시아연방보안국(FSB) 대변인은 “이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29일 체첸 대선 등 정치적 상황 때문에 러시아 당국이 조심스러워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체첸의 불안한 정정이 다시 국제적 관심을 끄는 것을 곤혹스러워한다는 것이다.

군사 전문가인 알렉산드르 골츠는 “추락 원인이 테러로 밝혀지면 (러시아가) 체첸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고 분석했다. 모스크바 카네기재단의 마샤 리프먼 박사는 “비행기가 공중 납치돼 폭발한 것은 2001년 9·11테러 후 전 세계에서 처음”이라면서 “자칫 허술한 안보체계에 대한 국민적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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