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맞는 위안부 할머니들 “恨이야 가슴에 묻는다지만”

  • 입력 2004년 8월 13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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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경기 이천시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위로행사에서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 사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천=연합
13일 경기 이천시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위로행사에서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 사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천=연합
“우린 국적이 없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여전히 ‘전쟁 중’이었다.

광복절 59돌. 일제의 폭압에서 벗어난 지 반세기가 훌쩍 넘었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이 기간은 육신과 영혼의 상처에 인내의 고통까지 더해진 야속한 시간일 뿐이다.

12일 오후 국내에서 유일하게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 입구에는 ‘못다 핀 꽃’이란 제목의 청동 소녀상이 서 있었다. 옆으로 ‘못다 핀 꽃의 주인, 연꽃 되어 잠드시다’란 문구가 적힌 고(故) 김순덕 할머니의 묘비가 눈길을 끌었다. 김 할머니는 6월 30일 뇌출혈로 숨졌다.

강일출 할머니(77)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린 순덕이 언니 따라가면 그만이야. 하지만 우리가 살아있을 때 과거사를 정리하지 못하면 후손들이 똑같이 당한다고.”

목소리가 떨렸다. 이어 지난달 21일 한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임기 중 한일간 과거사 문제를 공식 의제나 쟁점으로 제기하지 않겠다”고 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했다.

“난 외국에서 우리나라 사람 한 명이 다쳤다고 해도 마음이 아픈데 나라님은 수많은 사람들이 아프다고 해도 상관없는 모양이야.”

강 할머니는 중국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다 광복 후 귀국하지 못하고 중국에 정착했다. 2000년 3월 귀국한 강 할머니는 “이렇게 푸대접을 받느니 차라리 중국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옥선 할머니(78)에게 광복절의 소회를 물었다.

“난 국적이 없어. 우리 역사가 없는데 국적이 무슨 필요가 있어.”

그는 지난해 위안부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정부를 질타하며 국적포기 선언을 했다.

박옥선 할머니(81)도 “고구려 역사를 바로 잡는다고 하는데 당장 몇 십년 전 역사도 바로 잡지 못하면서…”라고 한마디하고는 입을 굳게 닫았다.

일본군 위안부는 2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1990년 이후 자발적으로 신고한 위안부는 220명. 이 중 현재 중국에 있는 위안부 9명을 포함해 모두 139명이 생존해 있다.

나눔의 집의 안신권 사무국장은 “정부의 무관심 못지않게 국민의 무관심도 문제”라고 말했다.

나눔의 집은 16일부터 5박6일 동안 한일 대학생 각 25명씩이 참가하는 ‘역사와 화해, 평화를 위한 역사기행’에 나선다. 일본 대학생은 6월 접수가 마감됐지만 행사를 사흘 앞둔 13일까지 한국 대학생 지원자는 20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날 나눔의 집은 15일 열리는 김순덕 할머니 49재와 일본군위안부 역사관 개관 6주년 기념행사 준비로 분주했다. 그러나 그들만의 행사로 끝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역사관에는 1990년 위안부의 실체를 처음으로 증언한 고(故) 배봉기 할머니의 유품이 전시돼 있다. 전시물이라고 해보았자 배탈약통 1개와 수저, 컵 2개, 사기그릇 4개가 전부다. 그러나 그곳엔 못다 핀 꽃의 절규가 가득했다. 행사참가 및 후원문의 031-768-0064

광주(경기)=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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