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濠, 9·11테러정보 수차례 묵살”

  • 입력 2004년 6월 8일 19시 03분


“알 카에다 테러조직이 서방세계에 테러를 하려고 합니다. 믿어주세요.”

9·11테러가 발생하기 14개월 전인 2000년 7월, 이슬람으로 개종한 영국 출생의 호주 국적자 잭 로체(50)는 6차례에 걸쳐 알 카에다의 테러 위협을 미국과 호주 당국에 전달하려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로체씨의 사례는 서방 정보기관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위협을 얼마나 한심하게 다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패 사례라고 LA타임스가 7일 전했다.

▽물거품 된 정보제공 시도=호주 관계당국이 로체씨의 존재를 깨닫고 체포에 나선 것은 그가 정보제공 시도에 나선 지 약 2년반이 지난 2002년 10월 30일. 인도네시아 발리 폭탄테러(10월 12일)가 발생한 뒤에야 관계당국은 그의 집을 급습했다.

18개월간 수감됐던 그는 지난주 재판에서 알 카에다와 호주 캔버라 이스라엘대사관 폭파를 공모했다는 죄목으로 9년형을 선고받았다.

법정에 제시된 증거에 따르면 그는 9·11테러의 주모자로 알려진 할리드 샤이흐 모하메드의 소재는 물론 9·11테러 등의 정보를 미국과 호주에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변호사 힐턴 퀘일은 “로체씨는 당시 알 카에다 지도부의 전화번호, e메일 주소, 거주지, 테러작업 방식 등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문전박대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7월 캔버라에 있는 미국대사관에 전화해 알 카에다 정보를 제공하려 했지만, 대사관측은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이어 호주 보안정보기구(ASIO)에 3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의 정보가치는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야 빛을 발했다.

로체씨는 자신이 체포된 뒤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파키스탄에서 모하메드를, 태국에서 함발리를 각각 체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믿고 있다고 그의 변호사가 전했다.

▽알 카에다와의 인연=그는 17세에 집을 떠나 독일을 거쳐 호주로 이주한 뒤 1978년 호주 시민권을 취득했다. 1992년 동료의 충고에 따라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1995년 호주로 돌아온 그는 급진단체인 제마 이슬라미아의 창시자로 알려진 아부바카르 바시르와 압둘라트 숭카르를 만난 뒤 극단주의 세계관을 받아들였고,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 훈련을 받으며 성전(聖戰)을 치를 전사로 변모했다.

2000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외곽의 캠프에서 10일간 폭발물 훈련을 마쳤다. 이곳에서 오사마 빈 라덴과 점심을 함께하기도 했으며 알 카에다 2인자 모하메드 아테프, 군 사령관 사이프 아델 등과 토론하기도 했다.

알 카에다가 로체씨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인 것은 이슬람 국가 출신이 아니어서 서방세계의 의심을 받지 않으면서 테러 음모를 꾸미는 데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

그는 호주로 돌아와 미 연방수사국(FBI) 웹사이트를 보고 나서야 자신이 만났던 5, 6명이 세계 최고의 지명수배자임을 알게 됐다. 충격을 받은 그는 자신이 이들을 배신한다면 살해될 것이라는 공포감을 가졌다. 그가 미국과 호주 관계당국과 접촉을 시도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잭 로체의 알 카에다 관련 정보제공 시도
일시사전 경고 내용비고
2000년7월캔버라 미 대사관에 전화해 알 카에다 정보 제공 의사 표명. 미 대사관은 호주 당국과 접촉하라고 답변미 대사관 반응:“로체씨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지만 대사관에는 관련 기록이 없다”
호주 보안정보기구(ASIO)에 알 카에다 정보 제공 의사 3차례 표명. ASIO는 추적 작업을 하지 않음존 하워드 총리 설명:“관계 당국이 로체씨를 무시하는 등 아주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돈 또는 존 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정보기관원과의 만남을 논의로체씨가 인도네시아로 이동하면서 만날 약속을 연기하자고 정보기관원에게 연락
〃 8월호주에 돌아온 뒤 ASIO에 전화 연락정보기관원이 로체씨와의 만남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아무도 그와 접촉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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