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보안장벽 국제사법 심판대에

  • 입력 2004년 2월 24일 18시 07분


《테러 공격으로 15세의 딸을 잃은 이스라엘 부모. 그리고 자기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농부들. 23일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에는 역사적인 ‘장벽 청문회’를 지켜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날 청문회는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에 건설 중인 보안장벽의 정당성을 따지기 위한 것. ICJ는 유엔총회의 요청에 따라 3일간 청문회를 열 예정이다. 청문회 이후 ICJ가 내릴 판결은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장벽의 목적을 두고 ‘테러방지’를 내세우는 이스라엘과 ‘불법적인 영토 가로채기’라고 주장하는 팔레스타인 가운데 한쪽은 명분을 잃을 수도 있다. 이스라엘이 내년 말까지 건설할 730여km의 장벽은 콘크리트 기반 위에 높은 철조망을 세우는 것이어서 사실상 ‘국경선’을 연상케하고 있다.》

▽21세기의 베를린 장벽인가=이스라엘 정부는 요르단강 서안으로부터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의 침입을 차단하겠다며 2002년 2월 이스라엘과 요르단강 서안을 분리하는 장벽 공사에 착수했다.

장벽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 이스라엘과 요르단강 서안을 가르는 국경이었던 ‘그린 라인’에 근접하기도 하고, 일부 구간에선 요르단강 서안 유대인 정착지를 보호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쪽으로 수km나 파고들었다. 장벽이 완성되면 상당수 팔레스타인 마을이 고립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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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약 180km 구간이 완공됐으며 2005년까지 총 730km가 건설될 예정. 이 중에는 예루살렘 인근 아리엘 정착촌을 에워싸는 장벽도 포함된다.

장벽 대부분은 콘크리트 기반에 3m 높이의 철조망으로 만들어진다.

4m 안팎의 도랑과 전자감응장치, 발자국을 확인할 수 있도록 흙을 덮은 흔적 탐지로(路)도 설치된다. 전체 장벽 가운데 약 8.5km 구간은 8m 높이의 견고한 콘크리트 담이며 감시탑도 세워져 있다.

▽영토 가로채기 논란 가열=팔레스타인측은 보안장벽을 ‘신(新)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주의)’로 규정하면서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위반해 교묘하게 영토를 빼앗아가고 있다고 비난한다. 공사가 완료되면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요르단강 서안 중 절반에 불과한 땅에, 그것도 벽에 둘러싸여 고립된다고 주장한다.

23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서는 수만명이 운집해 장벽 철거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집트 레바논 요르단 등 아랍 각지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이스라엘 군경은 폭력사태에 대비해 비상경계에 돌입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ICJ 청문회 하루 전 예루살렘에서 발생한 버스자폭테러(8명 사망)를 거론하면서 장벽 건설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장벽이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를 침범하는 것을 비난하면서도, 법적 해결보다는 외교적 해결을 선호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측 입장에 가까운 것이다.

ICJ는 보안장벽이 이동의 자유를 보장한 국제협약을 위반했다는 팔레스타인측 주장을 들을 계획이다. 이스라엘은 “ICJ가 재판관할권이 없다”는 서면 주장만 제출하고 청문회에 불참했다.

박혜윤기자 parkhy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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