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이곳]'당당한 戰犯' 밀로셰비치

입력 2003-12-17 19:18수정 2009-09-28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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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변한 게 없다.”

웨슬리 클라크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령관은 16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구(舊)유고전범재판소(ICTY)에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사진)의 전쟁범죄에 대해 증언한 뒤 이렇게 말했다.

유고연방 내 알바니아계에 대한 ‘인종청소’를 자행해 ‘발칸의 도살자’로 불렸던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 그는 2000년 민중혁명으로 축출된 뒤 지난해 2월부터 전범재판을 받고 있다. 클라크 전 사령관은 1990년대에 밀로셰비치와 100시간 이상 만난 바 있다.

‘대(大)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인종청소’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은 전범재판에서도 현란한 언변으로 법정을 농락하고 있다.

“나는 광란의 국수주의를 타파하려 한 실패한 평화주의자다.”

그는 재판 실황이 세르비아에 30분 시차로 중계된다는 점을 악용해 세르비아 민족주의까지 불 지르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변호사도 없이 출석한 그가 검찰측 증인을 논박할 때마다 세르비아에서 찬사가 터져 나온다”며 “세르비아인들은 이 재판을 자신들에 대한 재판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 사이 세르비아 정정(政情)은 더 불안해졌다.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이 재판 과정에서 ‘서방의 괴뢰’로 몰아붙인 조란 진지치 총리는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 추종세력에 의해 암살됐다. 진지치 총리는 그를 몰아낸 민중혁명의 주역이었다.

그동안 3번의 대통령 선거가 투표율 부족으로 무효화됐으며, 28일 실시될 총선에서는 극우파의 득세가 유력하다. 한술 더 떠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의 옥중 출마까지 거론된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도 어떤 식으로든 재판을 받겠지만,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의 사례는 폭군은 축출보다 설거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파리=박제균특파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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