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3년 12월 16일 19시 09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그가 연달아 중국을 들먹인 이유는 독특한 축구문화 때문. 한두 경기 성적만 부진해도 당장 감독 목이 잘리는 곳이 중국이다. 그래서 ‘감독들의 무덤’으로 불린다.
이런 살벌한 판에서 이 감독은 살아남았다. 중국으로 간 첫해 2부 리그 탈락 위기에 처한 충칭 리판을 맡아 이듬해 정규리그 4위로 도약시킨 뒤 2000년엔 중국축구협회(FA)컵 우승으로 이끌었다. 2001년엔 연봉 6억원의 특A급 대우를 받으며 칭다오 이중팀으로 옮겨 이듬해 다시 FA컵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외국인 지도자 가운데 한 명. 중국 언론은 그를 ‘강한 남자’로 부른다. 5년 동안 두 차례나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나 정작 중국인들이 이 감독을 좋아한 이유는 그의 의리 때문이라고. 숱한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며 팀과 선수들을 지킨 게 중국팬들을 감동시켰던 것.
중국축구엔 뿌리 깊은 공한증(恐韓症)이 있다. 지난 25년 동안 한 번도 한국을 이기지 못한 까닭을 그는 어떻게 볼까.
“중국축구의 실력이 뒤져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심리적 요인이 더 큽니다. 지금 중국은 축구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어요. 이대로라면 5, 6년 뒤엔 한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칠 것이라고 봅니다. 방심하면 안 됩니다.”
경남 함안 출신인 이 감독은 영남상고와 연세대를 졸업한 뒤 대우와 유공에서 선수로 뛰었고 일화 코치와 감독(97년)을 역임했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