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원재/미래투자 앞서가는 일본

  • 입력 2003년 12월 8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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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이 한반도 상공을 24시간 감시할 정찰위성을 발사한다고 발표했을 때 기자는 발사 당일 현장 취재를 신청했다. 남북한의 움직임이 어떤 방식으로, 어느 수준까지 탐지되는지가 궁금했다. 일본의 우주개발 실력을 발사기지인 가고시마(鹿兒島)현 다네가(種子)섬의 우주센터에서 직접 확인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며칠간 뜸을 들인 뒤 돌아온 답변은 ‘외국 기자의 방문은 사양한다’는 것이었다. 일본 정부가 외신을 상대로 적극 홍보에 나선 점을 생각하면 의외의 대답이었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담당자는 “상부와 상의한 결과 이번만은 곤란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처럼 보안에 신경을 쓴 정찰위성은 몇 차례 발사 일정이 연기되더니 끝내 엔진 결함으로 공중에서 폭발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 정부가 3년 넘게 공들인 화성 탐사선 ‘노조미’호도 화성 궤도 진입에 실패해 9일쯤 우주 미아로 전락할 처지다.

우주개발 시도가 잇따라 실패하자 일본 내에서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쟁국인 중국의 유인우주선 발사 성공에 빗대 “‘기술 강국’ 일본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었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일본의 우주진출 프로젝트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5월 소행성 탐사기를 발사했고 내년엔 달의 기원과 진화과정을 조사할 우주선을 쏘아 올린다.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1등에 도전하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일본이 독자 개발한 리니어 자기부상열차는 실험운행에서 시속 581km로 주파해 세계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내년에 신설되는 로스쿨 개교를 앞두고 사법시험 열풍이 거세다. 그러나 도쿄(東京)대는 물론 교토(京都)대 도호쿠(東北)대 등 지방 명문대의 이공계 학부에는 과학자를 꿈꾸는 지방 수재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신입생이 끊겨 존립을 걱정하는 한국의 이공계 대학엔 부러움의 대상이다. 기술자를 존중하는 풍토는 2000년부터 3년 연속 노벨 화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원동력이었다.

한국이 눈앞의 정치싸움에 정신이 팔린 사이 이웃들은 우주를 향해 달리고 있다. 중국은 2020년까지 중국인을 달에 착륙시킨다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 있다.

국가경쟁력은 국내총생산(GDP)이나 경제성장률 같은 수치를 높인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 당장은 빛이 나지 않아도 ‘미래의 경쟁’에 대비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한국 정부는 과연 미래를 고민하고 있을까. 적어도 일본에서 바라본 한국은 그렇지 않다.

박원재 도쿄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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