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이곳]학살 관련업체가 기념관 짓는다고?

  • 입력 2003년 10월 29일 19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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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독일 베를린에 들어설 예정인 유대인 기념관의 조감도.
내년 독일 베를린에 들어설 예정인 유대인 기념관의 조감도.
내년 독일 베를린 중심부에 들어설 예정인 ‘살해된 유럽 유대인 기념관’ 건설 작업이 잠시 중단됐다. 공사 하청업체의 전력(前歷)이 뒤늦게 문제가 된 탓이다.

유대인 기념관 설립이사회(이사장 볼프강 티어제 독일 하원의장)는 28일 기념관 자재에 사용할 오염방지제 생산업체인 ‘데구사’가 과거 유대인을 학살한 가스를 생산한 업체인 ‘데게쉬’를 보유한 전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나치는 데게쉬가 생산한 ‘자이클론 B’ 가스를 사용해 유대인 수백만명을 학살했다.

이사회는 일단 오염방지 처리작업을 잠시 미룬 채 법적 기술적 여파를 살핀 뒤 제품을 교체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데구사는 “이사회의 결정에 따르겠다”면서도 법적 효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데구사는 오염방지제를 자재 처리업체인 ‘에핀저 앤드 알바니’에 납품하기로 돼 있고, 따라서 기념관측이 계약을 취소할 권한이 없다는 것.

에핀저 앤드 알바니측도 이번 결정 때문에 작업이 몇 달간 지연될 수 있다면서 손해배상 청구소송 가능성을 시사해 파장이 계속될 전망이다.

데구사는 그동안 과거사 관련 사실을 투명하게 공개해 긍정적인 평판을 받아온 회사. 그러나 이사회는 “기념관 건립의 특수한 성격을 감안할 때 이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며 완고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같은 날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일본 도쿄(東京)도 지사는 “한일합병은 조선인이 선택한 것”이라는 망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과거사에 지나칠 만큼 철저한 독일과 지도층이 앞장서 과거사를 왜곡하는 일본. 두 나라가 묘하게 대비된 하루였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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