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과 바꾼 美 시민권…전사한 과테말라 고아출신 일병

  • 입력 2003년 4월 8일 19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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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민권이 뭐기에….”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입대했다가 이라크전에서 숨진 한 과테말라 고아 출신 병사 이야기가 뒤늦게 알려져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라크전 개전 3일만인 지난달 21일 이라크군의 공격을 받고 숨진 미 해병대 소속 호세 안토니오 구티에레스 일병(27·사진). 당시 구티에레스 일병은 ‘미군으로는 두 번째 사망자’로만 짧게 기록됐다.

영국 BBC방송 인터넷판은 7일 ‘과테말라 고아에서 전쟁 영웅으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구티에레스 일병의 짧았던 삶과 전쟁에 나서야 했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했다.

과테말라의 수도인 과테말라시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여덟살 때 고아가 됐다.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 엔그라시아와 구걸하며 살아가면서도 그는 건축가의 꿈을 키웠다. 미국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싶었던 그는 22세 때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4000㎞ 떨어진 미국으로 어렵게 밀입국했으나 곧 체포돼 불법이민자들에게 악명높은 이민귀화국으로 넘겨졌다. 앳된 얼굴의 그는 17세라고 나이를 속였고 이민귀화국측은 미성년자인 그를 추방하는 대신 캘리포니아의 라틴 가정에 입양시켰다.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대학에 진학해 그토록 원하던 건축을 공부하는 대신 군대에 자원했다. 이유는 단 하나. 미군이 되면 시민권을 쉽게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하루빨리 시민권을 얻어 과테말라에 남아있는 사랑하는 여동생을 데려오려 했던 것. 그러나 여동생과 함께 미국에서 살고자 했던 그의 소박한 꿈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움카스르 항구에서 이라크군이 쏜 총알을 가슴에 맞고 즉사했다. 과테말라에서 이 소식을 들은 여동생은 미국 시민권 때문에 ‘남의 전쟁’에서 숨져간 오빠의 죽음을 애도하며 오열했다.

한편 미 정부는 숨진 구티에레스 일병에게 미국 시민권을 부여키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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