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 사임…美 '9·11 특위' 난항

  • 입력 2002년 12월 15일 19시 36분


미국의 ‘9·11테러 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워싱턴의 정치 무대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사진)이 보름만에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키신저 전 장관은 13일 “위원장으로 일하기 위해 내가 설립 운영하는 기업을 청산할 수는 없다”며 사임했다. 그는 임명 직후부터 그가 세운 국제컨설팅기업 ‘키신저 어소시에이츠’ 고객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객관적으로 조사를 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판에 시달려 왔다. 고객 명단에는 외국, 특히 중동국가들이 많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명단을 공개하라는 압력을 받아왔다.

이에 앞서 민주당 몫의 부위원장으로 임명된 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도 11일 사임했고 그의 후임으로 발표된 리 해밀턴 전 하원의원도 수락을 꺼리고 있어 특별위 구성이 난관에 봉착했다.

미첼 전 의원은 “나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면 될 줄 알았다”며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에 위원회를 위해 법률회사를 그만두기 어렵다”고 말했다. 해밀턴 전 의원도 같은 이유로 고사하고 있다.

특별위는 앞으로 1년6개월 동안 9·11 테러를 막지 못한 미 정보당국과 항공안전체제, 출입국 관리 문제를 조사한 뒤 2004년 대통령선거를 채 6개월도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최종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 이 같은 정치적 부담 외에도 호주머니를 다 털어보이라는 요구를 받고 있어 구성에 난산을 겪고 있는 것.

백악관측은 대통령이 임명한 키신저 전 장관의 경우 “연방정부로부터 급여를 받지 않는 한 재산과 거래내용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고 두둔해 왔다. 그러나 미 의회조사국은 12일 “상원의 윤리규정에 따라 대통령 지명자를 포함한 모든 위원들이 재무상태를 공개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특별위는 공화 민주 양당에서 5명씩 모두 10명으로 구성될 예정. 민주당은 올해로 임기가 끝나는(그러나 아직 취직하지 않은) 맥스 클레런드(상원), 티모시 뢰머(하원) 의원을 위원으로 임명했다. 공화당에서는 키신저 전 장관의 낙마로 전 상원의원 슬레이드 고튼 외에는 위원을 고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고튼 전 의원도 테러에 이용된 4대 항공기의 제작사인 보잉사와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어 9·11 희생자 유가족들로부터 사임 압력을 받고 있다. 유가족 대표들은 키신저 전 장관의 사임을 환영하며 그의 후임으로 전 공화당 상원의원인 워런 러드먼의 임명을 요구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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