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모스크바 인질극’…피해자 8명 市상대 손배소

  • 입력 2002년 12월 3일 17시 51분


120여명의 사망자를 낸 모스크바 문화회관(돔쿨트루이) 인질사건의 피해자들이 모스크바 시정부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집단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8명이 모두 750만달러(약91억3200만원)의 보상을 청구해 3일부터 모스크바 지방법원에서 심리가 시작됐다.

이 소송이 주목을 끄는 것은 그동안 러시아에서 일어났던 많은 사고의 피해자들과 달리 본격적으로 당국의 책임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1996년 체첸반군이 저지른 대형 인질극과 1999년 수백여명이 사망한 연쇄 폭탄테러 사건의 피해자들은 정부가 선심 쓰듯 주는 형편없는 액수의 보상금을 받는 데 만족해야 했다. 오랫동안 권위주의 체제에서 살아온 러시아 국민들에게 ‘피해 보상’이라는 개념도 생소했고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00년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당시 지나친 교통통제로 피해를 본 몇몇 시민들이 지난해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한 것도 화제가 됐을 정도였다.

과잉진압 시비까지 있었던 이번 인질 사건 후에도 관련법상 책임이 있는 모스크바 시정부는 생존자에게 1인당 5만루블(약191만원), 사망자 유족에게는 10만루블(약382만원)씩만 지급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연쇄 소송에 당황한 모스크바 시정부는 세르게이 최 대변인을 통해 “인질극의 근본 원인인 체첸사태는 국가적 문제이지 모스크바 시정부의 책임이 아니다”며 소송 자제를 호소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한 변호인은 “이번 소송은 러시아 국민의 권리의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며 승소 판결이 나면 나머지 수백명의 피해자가 일제히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