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쿱찬 조지타운大교수 “EU-美 갈등… 서구문명 충돌 예고”

  • 입력 2002년 10월 21일 18시 08분


EU 가입 부푼 헝가리 - 더블린(아일랜드)AP연합
EU 가입 부푼 헝가리 - 더블린(아일랜드)AP연합
《아일랜드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의 동유럽 확대안이 가결됨으로써 EU 확대가 탄력을 받게 됐다. 몸집을 불린 유럽이 냉전 이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한 미국을 견제할 거대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미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인 찰스 쿱찬 조지타운대 교수는 미 저명 시사월간 애틀랜틱 11월호에 실린 ‘서구의 종말’이라는 기고문을 통해 “다음 문명간 충돌은 같은 서구세력인 미국과 유럽간에 벌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떠오르는 유럽〓쿱찬 교수는 EU가 경제통합에 이어 통합헌법 제정과 신속대응군 창설을 추진하는 등 정치 군사 외교적 통합을 차례로 진행하고 있는 점을 들어 “유럽은 앞으로 미국의 피할 수 없는 대항세력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U의 연간 경제규모는 미국의 10조달러를 넘보는 8조달러에 달한다. 에어버스는 최근 항공기 생산량에서 보잉을 압도했고 노키아는 세계 최대 휴대전화 생산업체로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회계부정과 테러 등으로 신뢰를 잃은 미국 대신 투자자들이 유럽으로 몰리면서 유로화 가치가 올라 달러의 기축통화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EU는 대미 기술 의존도에서 탈피하기 위해 독자적인 위성네트워크(갈릴레오)를 올해 구축했다.

이에 반해 미국은 EU의 성장을 무시하고 일방주의를 고집해 양세력간 불화를 자초하고 있다고 쿱찬 교수는 분석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교토의정서와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에서 일방 탈퇴했으며 동맹국과 상의 없이 ‘악의 축’ 국가를 지정하고 대(對)이라크전 준비에 나섰다.

쿱찬 교수는 EU가 △미국의 중동정책에 반기를 들었고 △교토의정서 발효를 주도했으며 △철강 및 농업분야에서의 무역분쟁도 불사하겠다고 나선 것 등을 미국에 대한 EU의 ‘앙갚음’ 사례로 들었다.

그는 “양측이 갈등의 위험성을 인식할 경우 경쟁세력으로 양립할 수 있겠지만 팍스아메리카나(미국의 지배에 의한 세계평화) 이후의 시대에 대비하는 데 실패할 경우 필연적으로 서구문명간 충돌을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무적 어려움 여전〓그러나 유럽이 자신들의 희망대로 미국에 대적할 만한 강한 세력으로 성장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견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핵심사안마다 EU회원국들간에 이익이 엇갈려 번번이 논의 시한을 넘기는 등 정책결정 메커니즘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코노미스트는 12일자에서 “경제는 바닥을 기고, 외교정책은 혼란스럽고, 개혁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누가 EU에 들어오고 싶어하겠는가”라고 자조했다. 이 잡지는 유럽 경제부흥의 희망이었던 유로화를 지탱해 온 성장안정협정이 핵심 회원국의 경기침체로 흔들리고 있는 것을 비롯해 대이라크전 등 주요 외교사안을 두고 각 회원국의 입장이 천차만별인 것을 예로 들었다. 농업시장 개방에 따라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주자는 공동농업정책도 프랑스의 반대로 시행이 계속 늦어지는 등 통합시장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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