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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8월 6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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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을 4개월여 앞둔 1971년 10월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가진 극비회담에서 일본의 군비증강과 경제발전에 대해 우려했으며, 심지어 키신저 보좌관은 일본의 경제발전을 허용한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 신문이 입수해 공개한 당시 회담록에 따르면 저우 총리는 “일본의 경제발전이 앞으로도 계속되면 언젠가는 일본을 억제할 수 없게 된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부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 경제를 이렇게 발전시킨 것은 미국”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키신저 보좌관은 “솔직한 일본관을 말하겠다”면서 “중국은 전통적으로 세계적인 시야를 갖고 있으나 일본은 좁은 시야밖에 없다”고 응수했다.
저우 총리가 다시 “말씀하신 그대로이다. 일본은 편협한 섬나라 근성을 가진 나라”라고 말하자 키신저 보좌관도 “일본은 돌연한 변화도 가능한 나라로 3개월 만에 천황 숭배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했다. 일본에 대해 어떠한 환상도 갖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미국은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만든 것을 후회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발전이 계속되면 미국과 중국은 태평양 양쪽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미중 양국은 우둔한 낙관주의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저우 총리가 다시 “전후 25년간 국방지출의 필요도 없는데 지금은 경제발전과 함께 국방지출이 증가하고 있다”며 일본의 비무장중립화를 강조했다.
이에 키신저 보좌관은 “만일 일본이 강력한 군비확장에 나선다면 전통적인 중미관계가 다시 유효해질 것이다. 일본이 자국 방위에 한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일본의 확장저지를 위해 타국과의 공동투쟁이 있을 것이다”고 못박았다.
4시간여 동안 계속된 당시 회담에 대해 산케이신문은 “미국이 미중관계 강화를 언제든지 미일동맹에 대체하는 카드로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했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