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하나-유로시대]③12개국 통용 첫날 이모저모

【1일 유럽 12개국에서 유로화가 성공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유로화를 외면할 것이라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이날 동이 트자마자 유럽인들은 새로운 유로화를 만져보기 위해 현금 지급기로 몰려들었다. 현금 부족, 가격 인상, 위조 지폐 등 예상됐던 문제들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유로화 통화당국인 유럽중앙은행(ECB)의 빔 뒤젠베르크 총재는 “유로화 통용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며 유럽연합(EU) 15개 회원국 중 유로화를 도입하지 않은 영국 덴마크 스웨덴 등 3개국은 하루 속히 유로화 대열에 동참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1일은 신년 휴일로 유럽의 대다수 금융기관과 기업 상점들이 문을 닫았기 때문에 유로화에 대한 본격적인 시험은 경제활동이 정상화되는 2일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글 싣는 순서▼

- <1>희망에 부푼 유럽12개국
- <2>유로화 출범 12개국 표정
- <3>12개국 통용 첫날 이모저모
- <4>“다음은 정치 통합” 부푼꿈

유로화에 대한 유럽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1일 유럽 전역에서 유로화를 인출한 사람은 줄잡아 3억명. 벨기에에서는 자정 직후 유로화 현금 인출이 분당 최대 600회에 달하기도 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분당 최대 인출 건수는 100회에 불과했다.

스페인에서도 유로화 인출 행렬이 장사진을 이뤄 1일 하루 동안 모두 3억유로가 인출된 것으로 추정됐다.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도 하루 동안 100만∼150만장의 유로화 지폐가 인출됐다. 이 같은 ‘유로 열기(euro fever)’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초월하는 것.

▼달러-파운드-엔 대비 강세▼

이날 유럽 기업과 대형 상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아 유로화는 주로 식당 카페 등 요식업소에서 사용됐다. 파리 베를린 등지의 식당과 카페에서는 대다수의 고객이 구 화폐를 지불하고 유로화로 잔돈을 받아 유로화가 금방 동이 나기도 했다. 또 잔돈 환산 과정에서 곳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우려됐던 큰 혼란은 없었다.

EU 회원국 중 고질적인 인플레 때문에 상대적으로 화폐 가치가 낮았던 포르투갈 그리스 등 일부 국가는 유로화 도입을 특히 환영하는 분위기.

유로화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윤락가에서도 환영을 받았다. 이곳의 윤락여성보호협회 회장은 “화폐 전환을 계기로 화대가 조금씩 올랐다”면서 “유로화가 20년 동안 변하지 않았던 윤락업계의 가격 현실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순조로운 ‘데뷔’의 영향으로 유로화 가치는 2일 외환시장에서 전날의 유로당 0.9001달러보다 0.01달러 이상 올라 거래됐으며 영국 파운드, 일본 엔 등에 대해서도 강세를 보였다. 경제전문가들은 통화 변경에 따라 유로화 가치가 상승했으나 앞으로는 유로화권의 경제 성적에 따라 가치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국민의 90%는 2일까지 자국 화폐인 리라로 거래한 것으로 집계됐으며 이탈리아 정부 관계자는 “유로화 도입이 결국 실패로 끝날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

한편 EU 회원국 중 유로화를 채택하지 않은 영국 스웨덴 등에서는 유로화 채택 문제가 다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1일 신년사를 통해 “영국이 무역과 고용 양면에서 유럽 대륙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유로화의 성공이 영국 국민의 이익에 중요하다”고 운을 뗐다. 스웨덴에서는 정치인들이 “유로화 채택을 영구히 거부할 경우 유럽에서 소외당할 수 있다”면서 유로화 채택 문제를 의회선거가 있는 9월경 국민투표에 회부하자고 제의하기도 했다.

▼英 언론 여전히 부정적 입장▼

유럽 언론은 유로화 통용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으나 유로권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영국 언론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더타임스를 비롯해 가디언, 텔레그래프 등 영국의 주요 일간지들은 ‘유럽,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다’ ‘유럽이 도박에 뛰어들었다’는 부정적인 제목들을 달았다.

정미경기자mickey@donga.com

파리〓박제균특파원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