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 1주일새 개벽]반바지 입고 축구…여배우사진앞 북적

  • 입력 2001년 11월 21일 18시 36분


《탈레반이 물러난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외신들은 카불이 ‘중세의 율법도시’에서 최근 일주일새 100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21세기 동시대로 돌아오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거리엔 딱딱한 코란 대신 금지됐던 아프간 대중음악이 흘러나오고 사진관과 음반점, 가전제품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공개경기장에서 금지됐던 축구가 다시 선을 보였고 매혹적인 여배우 사진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숨어 공부하던 여학생들은 이제 당당하게 수업을 받고 일자리를 빼앗겼던 여성들은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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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카불의 한 택시운전사가 라디오의 볼륨을 한껏 올린 채 탈레반 이전 시절 인기가수였던 부르얄리 왈리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달린다. 전통적인 아프간의 사랑노래 ‘가잘’이다.

라디오에선 사회자와 출연자들이 여성의 아름다운 입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탈레반 시절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모든 음악은 ‘사악한 것’이라는 율법에 따라 코란경전과 민족주의 노래만이 허용됐다.

‘하메드 포토 스튜디오’ 사진관 주인 미르 와히스는 연방 싱글벙글이다. 그의 가게는 가족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줄을 잇고 있다. 이전엔 증명사진을 찍는 것만 허용됐고 나머지는 모두 우상숭배라 해서 촬영이 금지됐었다.

14일 아침 컴퓨터와 CD 플레이어, TV와 비디오, 하이파이 오디오기기로 가득 찼던 압둘 카릴의 가전제품 가게 선반은 오후가 되자 텅텅 비었다. 5년 동안 고이 간직했던 제품들을 내놓자마자 동났기 때문이다.

이란과 인도 여배우의 아슬아슬한 모습을 찍은 브로마이드를 내건 가게 앞엔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화장품과 하이힐도 불티나게 팔렸다.

거리의 풍경만이 달라진 게 아니다. 15일 공개처형장으로 쓰였던 카불의 한 경기장에선 축구경기가 열렸다. 착용이 금지됐던 짧은 바지를 입은 축구선수들이 선을 보였고 관중들은 그동안 가슴속의 응어리를 토해내듯 함성과 박수로 환호했다.탈레반 시절 나이 들어 보여 턱수염을 깎았다가 두 번이나 감옥신세를 졌다는 카불 주민 카이스. 그는 “이게 정말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주일새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며 “우리는 난생 처음 자유를 맛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종대기자>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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