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경제팀 '연착륙' 이뤄낼까

  • 입력 2000년 12월 21일 18시 33분


《주가가 연일 폭락하는 등 미국 경제가 심상치 않다. 오비이락(烏飛梨落)격이지만 내년 1월에는 정권이 바뀌기 때문에 혼란이 더욱 심해질 우려도 있다. 특히 ‘신경제’를 주도했던 기술주의 하락이 두드러지자 사상 최장의 호황을 구가하던 미 경제가 연착륙이 아닌 경착륙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분석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미 증시의 추락원인과 전망, 곧 취임할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응방안을 살펴본다.》

▼'경착륙' 위기감 확산▼

‘메리 크리스마스 앤드 해피 리세션(recession·경기후퇴)!’

미국의 한 TV 방송국 앵커는 20일 뉴욕증시의 나스닥 지수가 곤두박질치며 경기후퇴 조짐이 확산되고 있다는 경제동향과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자의 경제팀 인선 뉴스를 전하며 시청자들에게 이런 인사를 했다. 새해에 미국 경제가 나빠질 것으로 우려되는 것을 빗대 ‘해피 뉴이어’라는 통상적인 새해 인사말 대신 역설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

지난 8년간 최고의 호황을 누려온 미국 경제에 마침내 ‘노란 불’이 켜져 내년 1월 출범하는 부시 행정부의 어깨가 무겁다. 기업의 수익은 점점 악화되고 있고 뉴욕증시 주가는 연일 연중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소비 심리는 위축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금융 경색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지난 2·4분기(4∼6월) 5.6%였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4분기(7∼9월)에는 2.4%로 떨어졌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내년에는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더욱 하락할 것이라며 경기 경착륙(hard landing)에 대한 강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내년도 미국 경제의 최악의 시나리오는 경기침체로 인해 환율이 불안해지고 경상수지 적자가 크게 확대돼 성장률이 3% 이하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작은 정부와 자유로운 민간경제를 중시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가 펼칠 경제정책은 △정부지출 억제 △대규모 감세 △규제 완화 등이 핵심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부시 당선자는 향후 10년간 1조3000억달러에 달하는 세금 감면을 통해 기업과 개인의 가처분소득이 늘어나면 투자와 소비를 자극해 경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진영에서는 이러한 감세정책이 물가상승 압력을 촉발해 경기진작이라는 목표를 쫓다가 인플레라는 더 다루기 힘든 문제에 부닥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금리인하’라는 경기진작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앨런 그린스펀 의장도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다.

부시 대통령당선자는 이날 차기 재무장관에 폴 오닐(알코아 알루미늄사 회장)을 지명하면서 “ 미국이 계속 번영하기 위해선 재무장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면서 오닐 회장을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미국의 역대 재무장관은 주로 월가 출신의 금융통이나 정치적 영향력이 큰 거물 등이 맡아왔다. 부시 진영 일각에서는 제조업계 출신인 오닐의 기용이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었다.

그러나 당초 유력하게 거론되던 후보들이 이런 저런 흠이 있어 제외된 뒤 결국 딕 체니 부통령당선자가 추천한 오닐 회장이 기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닐 회장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린스펀 FRB 의장과 호흡을 잘 맞출 적임자라는 평가도 있다. 두 사람은 허물 없이 지내는 가까운 친구 사이.부시 당선자는 17∼19일까지의 워싱턴 방문 기간 중 가장 먼저 그린스펀 의장을 만나 차기 행정부의 경제운용에 대해 협의했을 정도로 그를 중시하고 있다. 게다가 그린스펀 의장을 잘 아는 재무장관이 기용됐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와 그린스펀의 호흡이 잘 맞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나스닥 '끝없는 추락'▼

나스닥 폭락의 끝은 어디인가.

20일 미 뉴욕증시에서 첨단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가 7일 연속 하락하며 21개월만의 최저 수준을 기록하자 월가의 분석가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올해 개장시 장밋빛이었던 나스닥 시장은 이날 2,332.78로 장을 끝내 연초 대비 43%나 하락했다. 3월 중순의 연중 최고치(5,048.62)에 비하면 반도 안된다.

일부 투자자는 투매 움직임 마저 보여 이날 나스닥 주가는 업종, 우량주 여부와 관계없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 이날 주가가 전날에 비해 떨어진 종목은 3300개 종목이나 됐지만 상승한 종목은 824개에 불과했다.

이날 나스닥 주가가 폭락한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 기업의 실적이 호전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한 투자자들의 실망감이었다.

이밖에도 △ 전날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유지 결정에 대한 투자자들의 실망감 △지수 영향력이 큰 대형 종목에 대해 월가의 분석가들이 투자등급을 하향 조정한 것 △AT&T의 현금 배당 규모 축소 소식 △ 일부 기업의 실적 악화 우려 공시 등 각종 악재가 한꺼번에 시장을 강타했다.

투자자들은 FRB가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면서도 현행 금리를 유지하기로 결정한데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FRB가 금리유지 방침을 밝히면서 “고유가와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수요가 줄고 기업의 매출과 순익이 급감하고 있어 경기가 지나치게 둔화할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겠다”며 다음 달에는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지만 증시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파네스탁의 앨런 아커맨 부사장은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이 미국 경제에 대해 너무 경직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월가의 대표적인 종합금융사인 메릴린치는 이날 오전 대표적 기술주인 시스코시스템스와 IBM, 휴렛팩커드 등에 대한 투자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시스코시스템스의 경우 경기후퇴에 따른 기업의 정보산업(IT)분야 지출 감소 경향 때문에 중기 투자등급이 ‘매수’에서 ‘비중 확대’로 하향조정됐다. 이 소식이 알려진 뒤 시스코시스템스 주가는 12.57%나 하락, 나스닥 시장의 폭락을 주도했다.

메릴린치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브루스 스타인버그는 내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해 증시 하락을 부채질했다.

그는 내년 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당초 3.3%에서 3.0%로 낮추었으며 S&P 500 지수에 편입된 기업의 실적 성장률은 당초 8%에서 5%로 낮추었다.

향후 뉴욕 증시에 대한 월가의 전망은 암울하다. 대부분의 분석가는 나스닥지수가 아직 바닥에 이르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초 ‘1월 효과(January Effect·통상 매년 1월중 주가가 오르는 현상)’에 힘입어 일시 반등이 있을 수 있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