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원전 어제 폐쇄…어린이 40% '방사능질병' 고통

  • 입력 2000년 12월 15일 19시 22분


《20세기 최대의 핵참사를 낳았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15일 정오(한국시간 오후 7시) 완전 폐쇄됐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날 레오니트 쿠치마 대통령과 외교사절 내외신기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폐쇄 기념식을 가졌다. 쿠치마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 전체 전력의 5%를 생산하고 있는 체르노빌 원전의 폐쇄는 국가적으로 심각한 사건”이라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원전이 폐쇄되어도 원자로에 남아있는 핵연료 등 17만t의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문제가 계속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 지역의 오염을 해결하는데는 적어도 40년 동안 수백억달러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체르노빌 원전은 86년 4월 4호 원자로에서 화재가 발생해 인근 2600㎢지역이 오염되고 수백명이 죽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330여만 명이 피해를 보았으며 해마다 암 등으로 2500여명이 죽어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체르노빌 원전은 또 다른 사고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의 전력 사정과 폐쇄 비용 때문에 14년 동안 계속 가동돼 왔다. 원전 폐쇄를 계기로 재해의 현장 체르노빌의 실상을 돌아본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북서쪽으로 차로 2시간 가량, 체르노빌로부터 서쪽으로 30㎞ 정도 떨어진 작은 도시 폴리예스키는 86년 체르노빌 4호 원자로의 폭발사고로 인해 사람이 살지 못하는 ‘죽은 도시’가 됐다. 체르노빌 대참사 전에는 3만6000명이 거주했으나 이제는 8000여명만이 남아 남쪽으로 10㎞ 정도 떨어진 크라샤티치 마을을 중심으로 모여 살고 있다.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들도 86년 당시에는 폐쇄됐었지만 후에 통제가 풀리자 고향을 다시 찾아온 사람들이 재건한 것. 이곳의 보프치키프스카학교 교장 갈리나 니콜라예브나(54)는 “이 지역의 어린이들은 증세에 차이가 있을 뿐 모두 갑상선질환을 앓고 있다”며 “전교생 160여명 중 60명 정도는 음식을 먹으면 제대로 소화를 시키지 못할 정도로 소화기 질환에도 함께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방사능 피해 학생 토냐 체하넨코(10)는 숨이 차서 맘대로 뛸 수도 없고 늘 기침과 감기를 달고 산다. 남학생 발레리 코멘코(10)는 키가 116㎝, 몸무게 28㎏으로 몸집이 초등학교 1학년 정도밖에 안된다. 니콜라예브나 교장은 “아이들이 방사선을 직접 쬔 것은 아니지만 체르노빌 사고 이후 심장이 안 좋고 키가 안 크는 등 신체에 결함이 있는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참사 14년째…인구 80% 줄어▼

이 마을로부터 동쪽으로 10㎞ 정도 거리의 디차트키라는 곳에는 통행차단 검문소가 세워져 있다. 체르노빌을 중심으로 약 2700㎢의 지역(서울의 5배 가량)이 ‘죽음의 지역’으로 관리되고 있다.

▼'서울의 5배' 특별관리▼

방사능 피해는 체르노빌 인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체르노빌에서 남쪽으로 120㎞ 떨어진 키예프 부근도 인근 요양원이나 병원 학교를 찾으면 방사능 장애로 인한 질병을 치료받는 환자들을 항상 볼 수 있다. 키예프 북서쪽 30㎞ 지점의 브셰바디차의 요양소를 겸한 21번 학교의 6∼17세 재학생 185명 가운데 40명 정도가 갑상선질환과 저혈압 천식 등을 앓는다.

이 학교 교장 알라 그리고리예브나(51)는 “가장 큰 피해를 본 청소년들은 86년에 태어난 아이들이겠지만 그 후 태어난 아이들에게도 각종 질병이 많다”고 말했다.

▼선천성 장애 특히 많아▼

갑상선질환을 앓는 아이들은 심장이 뛰고 신경질적이고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며 두통을 앓고 목이 부어 뭔가 항상 목을 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결국 호흡기관도 나빠진다는 것.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는 15일 모두 폐쇄됐지만 ‘폭발사고의 유산’은 크고 깊게 계속 남아 있다.

<체르노빌〓성하운기자>haw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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