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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1월 26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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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의 아들을 모두 미국과 한국에서 성공한 의사로 길러내고 영문학계의 거목인 백낙청(白樂晴)서울대 영문학과교수를 사위로 둔 사람의 장례식치고는 너무나 조촐한 장례식 풍경이었다.
이날 장례식은 윤여사의 간곡한 유언에 따라 이뤄진 것. 23일 오후 6시 윤여사가 운명하자 4남인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한광수(韓光秀·60)씨는 모친이 미리 준비한 수의 속에 넣어져 있던 유언을 읽고 그만 숙연해지고 말았다.
“부음은 소문내지 말고 간단하게 알리고 꽃이나 조의금은 엄금하며 간단히 3일장을 치러 화장해다오. 재는 물이나 산에 뿌리며 매장터나 유골처는 만들지 말 것을 신신당부한다.”
한씨는 “자식들이 모두 미국에 있기 때문에 귀국하는데 시간도 필요했고 복지관이 장례식장으로 적합하지 않았지만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따로 부음을 내지 않고 30시간만에 장례를 치렀다”고 말했다. 때문에 미국에 있는 장남 영수(榮洙·67·의사) 차남 성수(性洙·66·미시간의대 명예교수) 3남 남수(南洙·63·의사)씨는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이들은 49재 때나 어머니의 영전에 분향할 예정이다.
윤여사는 1936년 개성에서 내과 의사인 남편 한철호(韓喆鎬)씨와 함께 양로원 보육원 및 고아를 위한 일종의 기술학교인 유빈관 등 3개 복지시설의 문을 열었다. 1966년 남편이 7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자 혼자 힘으로 이를 꾸려갔다. 국내외에 있는 아들 딸들이 물심양면으로 이를 후원했다. 고인은 ‘잘나가는 친자식’ 보다 ‘불우한 남의 자식’들을 더욱 정성껏 보살폈다.
유가족들은 고인의 뜻을 기려 유골을 화장한 뒤 전북 익산의 원불교 공원묘지 납골당에 안치했다. 부의금도 원불교 공익사업에 전액 헌납했다.
어머니의 유지를 받든 한부회장은 의료계 집단파업으로 검찰에 구속됐다가 풀려난 뒤 갑상선암에 걸린 사실을 발견했지만 “의사 파업으로 환자들이 고통받는데 어떻게 나 혼자 수술 받느냐”며 주위의 수술 권유를 거절했다가 의대교수들이 진료에 복귀한 뒤 뒤늦게 수술을 받기도 했다. 장례식에 참석했던 인사들은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이호갑·이수경기자>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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