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지모리를 어찌하나"…장기체류 인정할듯

  • 입력 2000년 11월 23일 18시 28분


일본에 사실상 망명을 요청한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대통령의 처리를 놓고 일본이 고심하고 있다. 그는 일본계 2세이기 때문이다.

후지모리 전대통령이 보여준 행동은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다. 10년간 통치했던 나라를 하루아침에 버리고 외국 호화호텔에서 사직서를 보낸 정치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매체는 17일 후지모리 당시 대통령이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에 참석한 뒤 슬그머니 일본에 입국했을 때 침묵했다. 그가 호텔에 틀어박혀 얼굴을 내밀지 않은 탓도 있지만 일본인의 피가 흐르는 그를 곤경에 빠뜨리지 않으려는 배려도 작용했다. 그에 대한 일본인의 감정은 그의 부모가 태어난 구마모토(熊本)시의 한 주민의 말이 대변한다. “이곳에서 대통령이 나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사태가 생긴 것은 안타깝지만 대통령으로서는 잘했다고 생각한다.”대통령시절 그는 두 차례나 부모의 고향을 찾았다.

언론은 그가 의회에서 파면되자 태도가 다소 달라졌다. 그러나 대세는 비난보다는 ‘공과(功過)가 있다’는 내용. 다만 아사히신문은 사설을 통해 “페루 국민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왜 여행도중 정권을 버리기로 결단했는가. 권력의 이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귀국해서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는 것이 정치가의 책임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의 태도는 신중하지만 호의적이다. 야마자키 류이치로(山崎隆一郞) 외무성 대변인은 “그가 대통령직을 잃는다고 해서 일시적인 체제까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관방장관도 그가 직접 체류요청을 한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뜻을 밝혔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일본 정부가 그의 장기체류를 인정할 가능성이 크다.

초점은 그가 장기체류에 필요한 일본국적을 갖고 있느냐에 모아질 것 같다. 일본은 정치적 망명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지모리 전대통령은 그동안 일본국적 보유설을 철저하게 부정해 왔으나 21일 기자회견에서 “내가 태어났을 때 부모가 리마의 일본영사관에 출생신고를 했다”며 일본국적을 갖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가 일본국적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브라질과 페루에서 태어난 일본계 2세 25만여명에게‘특별영주권’을 내주고 있는 일본 정부로서는 그를 받아들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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