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휩쓴 '생존게임' 열풍…CBS 마지막회 4천만명 시청

  • 입력 2000년 8월 24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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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 쇼’라는 방송의 새 영역을 개척한 선구(先驅)인가, 시청률만 의식한 ‘엿보기’ 프로그램의 극치인가.

5월 31일 미국에서 첫 방송돼 3개월동안 매주 수요일 저녁 수천만명의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끌어 모았던 CBS방송의 ‘생존자(Survivor)’가 23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고 뉴욕타임스지가 24일 보도했다.

말레이시아의 열대섬 팔라우 티가를 무대로 문명과 격리된 16명의 남녀가 상금 100만달러를 놓고 생존게임을 펼친 ‘생존자’는 방영기간 내내 수많은 논란과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타임과 뉴스위크지 등은 생존자를 커버스토리(표지기사)로 다루며 ‘문화적 현상’으로 주목했을 정도.

생존자는 오지에서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쥐를 잡아 가죽을 벗겨 구어먹거나 대나무로 집을 짓는 참가자들의 원시적인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첫 회에 1500만명이었던 시청자수는 마지막 날 4000만명으로 늘어났다. 2450만명에 이른 평균 시청자수는 여름 시즌 프로그램 사상 최고의 시청률. 마지막 4명이 겨룬 최종회에서 우승의 영예는 로드 아일랜드 출신의 리처드 해치(39)에게 돌아갔다.

생존자의 성공 원인은 무엇일까. 워싱턴포스트지는 △저렴한 제작비 △결과의 예측불가성 △젊은층의 흡입력 등을 이유로 꼽았다. 생존자의 편당 제작비는 8만달러(9600만원).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NBC 시트콤 ‘프렌즈’의 주인공 제니퍼 애니스턴의 출연료(4000만달러)의 500분에 1에 불과하다. 반면 CBS 시청자의 평균 연령이 53세에서 47세로 낮아질 정도로 젊은 시청자가 폭증하는 바람에 광고요청이 급증, 30초짜리 CF가 60만달러로 치솟았다.

시청자들이 성공한 직업과 가공된 흥분보다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와 일상적 재미에 끌리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있다. ABC방송의 마이클 데이비스는 “프라임 타임(황금시간)은 ‘프렌즈’처럼 성형 미인들로 가득찬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판타지였다”면서 “생존자는 이런 고정관념을 바꿨다”고 지적했다. 사전 제작한 작품이었지만 마지막 회까지 우승자를 숨긴 전략도 주효했다. 제작진들은 비밀을 유출한 게 입증되면 100만달러의 벌금을 물겠다는 각오로 방송에 임했던 것.

전문가들은 “생존자가 향후 방송업계에 미칠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이라며 일단 제작비의 하향화 추세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시트콤과 드라마 일색이던 프라임 타임대 프로그램의 질적인 변화도 초래할 전망이며 CBS는 속편격인 ‘생존자2’를 준비중. 하지만 상업적 가능성을 확인한 할리우드가 생존자의 모방물 제작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 엿보기 프로의 홍수라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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