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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8월 1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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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서의 장남인 수이(舒乙·65) 중국현대문학관장에 따르면 당시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추천작가 수백명 중 5명을 선정한 다음 비밀투표로 라오서를 뽑았다. 이에 따라 베이징(北京) 주재 스웨덴대사관이 라오서의 행방을 찾았으나 중국 정부는 생사 확인을 거부했다는 것.
심사위원회는 다시 논의를 거듭한 뒤 ‘아시아 문학가를 선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조건으로 재투표를 실시해 수상자를 가와바타로 수정 결정했다.
라오서는 ‘찻집’ ‘낙타 인력거꾼’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중국의 대표적인 작가로 문화혁명 발생 직후인 66년 8월 홍위병들에게 폭행을 당한 뒤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 수이는 최근 상하이의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화혁명이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고 당국의 처사를 비판했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