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E메일 감청법 비판 고조…정부 요청땐 암호 제공

  • 입력 2000년 7월 20일 18시 38분


영국 정부가 E메일과 각종 컴퓨터 통신 수단을 사실상 아무런 제한 없이 공식 감청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이번 법안은 개인과 기업 등 인터넷과 E메일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정부가 요구할 경우 당사자는 암호까지 제공해야 하는 강력한 사이버 감시책이라고 미국 뉴욕타임스지가 20일 보도했다.

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영국 정부는 서방 국가들 가운데 최초로 E메일과 통신자료의 해독을 위한 암호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각계 각층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은 내주 중 상원과 노동당이 주도하는 하원을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내무부의 한 고위관리는 “이번 법안은 갈수록 정교해지는 21세기형 신종 범죄를 막기 위해 꼭 필요한 권한을 정부에 주자는 것”이라며 “어린이포르노 마약밀매 돈세탁 같은 범죄들이 사이버 공간을 통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어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법안은 사생활과 인권 침해의 소지가 많은데다 자칫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등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국가안보와 국민의 복리를 지키고 강력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E메일 감청과 전자통신의 감시를 허락한다’는 조항 자체가 정부에 무제한의 감청 권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블랙박스’라는 E메일 감시 프로그램의 강제 설치 여부. 인터넷 서비스업체들은 정부가 원할 경우 ‘블랙박스’를 반드시 설치해야 하고 유지비도 직접 부담해야 한다. 법원의 허가도 필요 없이 내무부 장관의 직권으로 가능하다. 또한 정부가 요구하는 암호나 해독 프로그램을 제출하지 않을 경우 2년의 징역에 처해질 수도 있다. 미국도 연방수사국(FBI)이 ‘카니보어’라는 감청프로그램을 갖고 있지만 특정한 곳에 설치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영장을 받아야 하고 유지비도 전액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조들과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등 인권단체들은 “새 법안은 기본적인 인권조차 무시하는 것”이라며 “인터넷 업체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결국 영국의 인터넷 사업을 퇴보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계는 이번 법을 시행할 경우 향후 5년간 9억6000만달러(약 1조600억원)의 돈이 필요할 것이며 영국 경제에 미치는 기회 손실 비용이 최대 690억달러(약 76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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