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파리]김세원/청년같은 부모… 애늙은이 자녀

  • 입력 2000년 4월 3일 19시 22분


올해 52세인 프랑스 여성 스와시는 나이보다 열살은 젊어 보인다. 여대생들에게 어울릴 것 같은 나프나프나 쿠카이 같은 캐주얼 브랜드를 즐겨 입고 몸매관리를 위해 토요일 오전에는 현대무용과 테니스, 화요일 저녁엔 수영을 한다.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저녁은 다이어트 비스킷으로 때운다. 20대 초반에 결혼해서 8년만에 이혼했으나 두 아들을 키우면서 직장생활을 계속했다.

자녀교육보다 자신의 사회적 성공에 더 비중을 두었던 스와시와는 달리 그녀의 장남인 질은 자녀교육이 최대의 관심사다.

▼ 젊은층 최대관심사는 가정 ▼

27세에 이미 세 자녀를 둔 질은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자동차 세차장 위층에 살림집을 마련했다. 석사과정을 마친 그의 아내도 취직 대신 가정을 선택했다. 부모가 이혼했을 때 질의 나이는 겨우 일곱살이었다.

질은 “부모의 이혼이 일찍 가정을 꾸리는데 영향을 미쳤다”며 “자녀교육을 통해 부모로부터 배우지 못한 부모로서의 역할과 권위를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스와시와 질의 경우처럼 ‘철부지 같은 부모’와 ‘어른스러운 자녀들’이 늘어나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30대 여성 사회학자 아가트 푸르노는 최근 ‘역할 혼돈’이란 저서에서 프랑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대간의 역전현상’을 잘 묘사했다.

푸르노는 ‘영원한 젊은이’와 ‘애늙은이’란 개념을 통해 부모와 자식의 역할전도 현상을 설명했다. 영원한 젊은이는 1945년 2차대전 종전 직후 베이비붐때 태어난 68세대들을 일컫는다.

▼ 68세대는 사회적 성공 우선 ▼

68년 5월 혁명의 주역이었던 이들의 이데올로기는 자유방임주의와 모든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탈권위주의로 특징지어진다. 간섭을 싫어하고 자기 중심적인 이들은 부모와 자식, 남성과 여성, 통치자와 피치자가 모두 평등하며 수시로 역할을 바꿀 수 있는 세상을 유토피아로 꿈꿔왔다.

68세대는 혁명이 끝난 뒤 30여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청년’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자녀들은 자녀교육에 관심없는 부모탓에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고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의 기회도 잃어버렸다. 안정된 직장을 찾는 일이 급해 체제개혁이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푸르노는 90년대 초반 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부상은 부모세대가 물려주지 못한 가족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뿌리의식을 찾기 원하는 이들 애늙은이들 덕분이라고 지적했다.

미완의 혁명을 외치는 50대와 현실에 안주하기 바쁜 20대, 프랑스의 세대간 역전 현상은 남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

한국에서도 모래시계 세대들이 점차 사회의 전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김세원특파원> clai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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