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티모르 주민투표]새벽부터 장사진…뜨거운 열풍

  • 입력 1999년 8월 30일 19시 16분


역사적인 주민투표가 실시된 30일, 동티모르 내 850개 투표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유권자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일부는 전날 밤부터 투표소 밖에 천막을 치고 밤을 새울 정도로 투표열풍은 뜨거웠다. 호주의 시드니,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 동티모르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마련된 25개 투표소도 ‘고국’의 장래를 걱정하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투표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대체로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끝났다.

○…전날만해도 동티모르 주도 딜리에서 독립파와 자치파가 유혈충돌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컸지만 투표 당일은 예상외로 평온했다. 투표소마다 양파가 뒤섞여 있었으나 살벌한 대결양상이 없어 취재진이 의아해할 정도.

○…대부분의 투표소에는 폭력사태에 대비해 기관총으로 무장한 인도네시아 군과 경찰이 경계를 폈으며 유엔동티모르파견단(UNAMET) 소속 선거감시원들은 부정 투표에 신경을 곤두세운 모습.

○…딜리 쿨루훈 지역의 한 투표소에는 시작 전부터 250여명이 설레는 표정으로 줄을 서 있었다. 팔에 붕대를 감은 채 부축을 받으며 나와 가장 먼저 투표한 66세 할머니는 “27일 자치파 민병대한테 맞았다”면서도 투표를 마친 데 대해 흡족한 표정.

○…일부 주민은 자치파 민병대의 협박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자치를 지지했다고 말하기도. 딜리 서쪽 리퀴카 지역 투표소에서 투표한 한 유권자는 “민병대가 투표결과 독립파가 나오면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해 하는 수 없이 자치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울상.

○…독립운동가이자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호세 라모스 호르타는 수백명의 동포와 함께 망명지인 호주 시드니에서 투표. 호르타는“독립운동을하다숨진 이들의 영혼에이한표를 바친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호르타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카를로스 벨로 주교는 수백명의 각국 취재진의 질문공세 속에 딜리에서 투표에 참가.

한편 자치파 민병대 지도자인 에우리코 구테레스는 딜리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뒤 “모든 동티모르인들이 독립이든 자치든 결과를 인정하기를 바란다”고 말해 눈길을 끌기도.

○…바차루딘 주수프 하비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수도 자카르타에서 투표상황을 수시로 보고받는 등 투표진행 과정을 주시. 하비비대통령은 앞서 29일 전국에 방영된 TV 연설에서 “모든 동티모르 주민들이 단합해 미래의 번영을 이루길 바란다”며 자치를 선택해줄 것을 호소.

<자카르타=강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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