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프파문」터키 女의원 의원직-시민권 박탈 위기

  • 입력 1999년 5월 16일 20시 04분


터키의 한 여성의원이 스카프 때문에 의원직은 물론 국적까지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술레이만 데미렐 터키 대통령은 15일 이슬람교 율법에 따라 스카프를 머리에 쓴 채 의회에 등원해 ‘스카프 파문’을 일으킨 메르베 카박지(31)의 시민권을 박탈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뷜렌트 에체비트 총리는 “이 법령이 관보에 게재되는 즉시 카박지의 시민권은 박탈될 것”이라고 밝혔다. 선거관리위원회도 카박지의 의원직 보유가 적법한지 여부를 검토중이다.

카박지가 이렇게 된 표면적 이유는 이중국적 문제. 터키는 이중국적을 허용하지만 카박지는 미국국적 취득 사실을 당국에 신고하지 않아 절차를 어겼다는 것.

그러나 진짜 이유는 국내외에 파문을 일으킨 ‘괘씸죄’라는 분석이 많다. 친(親)이슬람 정당인 도덕당의 초선의원인 그녀는 공공장소에서는 착용이 금지된 스카프를 한 채 2일 의회에 첫 출석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날 의회가 정회하는 소동 끝에 그녀는 취임선서도 못하고 쫓겨났다.

‘스카프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터키 검찰은 도덕당이 스카프착용을 옹호함으로써 헌법에 도전했다며 기소할 움직임을 보였다. 터키에 있는 이란 대학생들이 카박지 지지시위를 벌이자 터키 외무부는 11일 이란대사를 소환해 항의했고 이란 정부는 “터키가 내정문제를 남의 탓으로만 돌린다”고 비난하는 등 양국간 외교갈등을 낳기도 했다.

이란 등 다른 이슬람국가는 여성의 스카프착용을 의무화하거나 권장한다. 그러나 터키는 국민의 99%가 이슬람교도인데도 공공장소에서 공직자의 스카프 착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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