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1999년 4월 25일 19시 59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최상룡〓한반도에서의 냉전구조 해체와 평화 및 통일의 조건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한국은 베트남이나 독일과는 달리 전쟁이나 흡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통일을 모색하고 있는 중입니다. 남북한이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해 이론적으로 타당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이 있겠습니까.
▽사카모토 요시카즈〓베트남과 독일의 통일교훈에 따라 제3의 통일의 길을 추구하고자 하는 한국정부의 혁신적인 노력을 높이 평가합니다. 제3의 길은 두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실현가능하다고 봅니다. 남북한의 긴장을 완화하고 양측의 국내정치와 경제체제를 동질화하는 것이지요. 한국 미국 일본을 포함하는 서방의 정책은 이를 촉진하고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중국과 대만이 접촉과 교류를 통해 통일을 지향하고 있는 것은 한국이 추구하는 제3의 길의 성공여부에 긍정적인 시사가 될 것 같습니다.
◆서방 對北관계에 우위
▽최〓교수님은 한반도 냉전구조의 특징을 비대칭성(asymmetry)에서 찾고 있습니다.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기 위해선 한 미 일 등 상대적으로 우세한 서방이 북한에 대해서 융통성을 보여야 된다고 하시는데….
▽사카모토〓세계적인 동서냉전체제와 한반도 냉전 간에는 근본적 차이가 있어요. 전자가 미국과 구 소련의 핵 평준화와 균형으로 특징지어진다면 후자는 서구가 압도적 비대칭적 우월성을 지니는 전략적 관계로 설정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매우 한정된 정책선택권을 지닌 북한에 비해 서방의 선택권이 매우 넓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미국과 한국의 대북포용정책은 그러한 선택권의 유연한 활용으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최〓교수님은 남북한 관계에서는 ‘주고 받기(give and take)’방식에 의한 정상적인 교섭이나 상호주의 원칙이 지켜지기 어렵다고 보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한국이나 미국의 북한정책에서 이른바 ‘한계선(red line)’은 어떻게 설정해야 합니까.
◆벼랑끝전술은 두려움때문
▽사카모토〓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비대칭성을 고려할 때 북한에 서구의 제의에 부합하는 반대급부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북한의 제한된 정책선택의 범위를 염두에 두면 ‘주고 받기’식의 정상적인 외교협상 유형이 북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서방이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서방의 비대칭적 우월성은 서방 국가들이 ‘주고+주고 받기(give+give and take)’식의 외교협상전략을 채택함으로써 경직된 악순환의 반작용을 중단시킬 수 있는 일방적인 이니셔티브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북한은 대미교섭을 최우선시 하면서 지금까지 한국을 가능하면 배제하려고 했습니다. 북한이 앞으로도 한국배제태도를 견지해나갈 것으로 보는지요.
▽사카모토〓북한의 주관심사는 군사적 안보로, 가장 큰 위협은 미국이에요. 이런 점에서 북한이 다른 나라보다 미국과의 협상에 중점을 두는 것은 자연스러운 정책이라고 봅니다. 더구나 미국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북한은 세계적 초강국으로부터 사실상의 외교적 승인을 받은 셈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핵무기 비확산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문제 외에 북한의 경제개혁과 발전을 위한 금전적인 부담은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일본의 협력과 함께 한국의 대북 경제지원 기술이양 투자 등은 북한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곤궁에서 벗어나 경제발전을 이룩하는데 필수적이에요.
▽최〓핵과 미사일을 통한 북한의 지속적인 벼랑끝 외교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사카모토〓북한의 벼랑끝 외교는 북한이 느끼는 두려움과 북한이 갖고 있는 협상카드의 제약을 반영하는 개념으로 봅니다. 북한의 벼랑끝 외교는 제 개념으로는 ‘비대칭적 허약함’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북한이 벼랑끝 전술과 같은 호전적인 과민반응을 도발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최〓최근 방한했던 이집트의 무하마드 무바라크 대통령은 남북한의 화해를 위한 메신저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습니다. 남북 간의 적대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효과적인 통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사카모토〓무바라크 대통령이 중재역할을 긍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저는 그런 역할을 기대하지 않아요. 오히려 한국이 인내심을 갖고 중국에 그 역할을 맡아줄 것을 요구하는 편이 더욱 낫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과 같은 미국인이 더욱 효과적이겠지요.
◆중재役은 美-中이 적합
▽최〓금후 동아시아 질서는 외교 전략적으로 미국과 중국을 축으로 움직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한 구도 속에서의 일본의 역할, 특히 한일관계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새로운 구상이 필요합니다.
▽사카모토〓저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 협력해 비(非)헤게모니적이고 자율적인 동아시아지역협력체, 더 나아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협력할 수 있는 지역협력체의 형성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봐요. 통일한국은 그 목적에 더욱 부합할 것입니다. 한일이 지역협력의 핵심으로 유대를 맺으려면 먼저 일본정부가 과거 식민지 및 전시지배체제의 개별희생자들인 소위 ‘위안부’와 강제징용된 노동자들에게 공식적인 차원에서 배상을 하고자 하는 확고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한국정부는 최근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통일이 이루어진 후에도 미군이 동북아 지역의 안정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주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주일미군의 역할과 함께 교수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단기적 성과 집착말아야
▽사카모토〓이 문제에 대해 확정적인 언급을 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로선 예상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을 고려해야 하겠지요. 주한미군을 거의 영구적으로 한반도에 주둔시키는 정책은 남북한의 화해와 통일을 촉진시키기보다는 저해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최〓김대중정부는 북한에 대해 화해 협력 교류를 통한 포용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정책의 전략적 의미는 무엇이며 고려해야 할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카모토〓제 생각으로는 김대중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은 사려있는 장기적 전략으로 남북한 국민의 이익은 물론 주변국 국민의 공동이익을 목표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기적인 성과 여부가 이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