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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4월 23일 19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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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인 노동당 출신으로 팔레스타인에 대해 강경정책을 취하는 집권 리쿠드당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마찰을 빚기도 한다. 97년 9월 이스라엘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에게 “평화협상 추진을 위해 네타냐후총리를 강하게 압박하라”고 주문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을 빚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
때로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직접 회담하는 적극적 활동파이기도 하다. 하임 와이즈만 초대 대통령의 조카인 그는 이스라엘 정계 최고 명문가 출신. 국민의 폭넓은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3월 임기 5년의 7대 대통령에 재선됐다.
이스라엘 대통령은 1백20명으로 구성된 의회(크네세트)에서 선출되는 국가수반으로 △의회 개회선언 △외교사절 신임장 접수 △조약과 법안 서명 등의 헌법상 권한을 갖는다.
79년 이집트와의 평화협정(캠프 데이비드협정) 체결 때는 국방장관으로서 협상타결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에게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돌려주도록 적극 건의해 협상의 물꼬를 트는 데 기여했다. 공군사령관 등 20여년간 군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67년 이집트와의 6일전쟁(3차 아랍전쟁)에서도 능력을 발휘했다.
69년 교통장관으로 정계에 입문했을 때에는 리쿠드당 소속으로 아랍권에 대해 강경한 편이었으나 차츰 온건파로 돌아섰으며 중동평화에 대한 견해차이 때문에 88년 노동당으로 옮겼다.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