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깜짝」개각 전각료 해임…즉흥적 단면 『눈총』

  • 입력 1998년 3월 25일 19시 59분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느닷없이 총리 이하 전각료를 물러나게 함으로써 종잡기 힘든 그의 통치 스타일이 또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옐친의 통치 스타일 특징은 ‘책임 뒤집어 씌우기’와 ‘2인자 짓밟기’로 요약된다. 그가 지금까지 수시로 각료를 갈아치운 배경을 들여다 보면 이같은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그 방법도 ‘깜짝 쇼’스타일이다. 워싱턴 포스트지도 이번 내각 총사퇴지시를 “계획없이 즉흥적이고 급진적이며 과격한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옐친은 우선 내각을 개편할 때마다 각료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잘못을 아랫사람에게 떠넘긴다. 그는 정책집행이 지지부진하거나 자신에 대한 야당의 반대가 극심하면 공개석상에서 담당 각료를 비난하고 곧바로 그를 해임한다. 지난해 5월 국방장관에서 해임된 이고르 로디오노프가 대표적인 경우. 크렘린궁은 로디오노프를 경질하면서 군개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로디오노프장관은 경질 전날 옐친대통령을 만나 “예산없이 군개혁은 없다”며 군인들에게 밀린 임금지급을 위한 예산이 필요하다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개혁에는 예산의 뒷받침이 필수적인데도 옐친은 한푼도 지원하지 않으면서 군개혁이 실패했다며 장관을 갈아치운 것.

권력욕심을 조금이라도 드러낸 사람은 즉각 괘씸죄에 걸린다. 경쟁자가 될만한 상대는 초기단계에서 제거해 왔다.

이번에 해임된 빅토르 체르노미르딘이 5년간이나 총리로 재임할 수 있었던 것도 2인자의 위치에 있으면서 권력욕심이나 대권 야심을 내비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옐친은 체르노미르딘이 최근 자신의 건강이상으로 인한 권력공백의 틈을 타 TV에 고정 출연하는 등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자 경쟁자로 인식, 제거한 것으로 모스크바 정치평론가들은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옐친은 96년 대선에서 3위를 차지한 알렉산드르 레베드를 끌어들여 결선투표에서 승리,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 뒤 국가안보위원회 서기가 된 레베드가 체첸평화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 지지율이 크게 올라가자 즉각 그를 해임한 것이 좋은 예.

옐친이 택하는 개각시점도 특이하다. 개각은 거의 대부분 그가 병상에서 일어난 직후에 이뤄진다. 그는 이번 내각 총사퇴결정도 감기때문에 열흘간 병상에 있다가 돌아온 직후 단행했다. 94년 4월 아나톨리 추바이스 행정실장과 보리스 넴초프 니제고로드주지사를 부총리에 기용할 때도 폐렴에서 회복된 직후였다.

이에 대해 분석가들은 옐친이 병석에 있는 동안 대통령특별보좌관으로 있는 둘째딸인 타치아나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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