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選연임 수하르토]『이젠 끝이다…너무 늙었다』 엄살

  • 입력 1998년 3월 10일 19시 46분


7選축하 박수
7選축하 박수
▼수하르토 누구인가〓“이번이 끝이다. 더는 출마하지 않겠다.”(대통령 4선 후)

“다시 출마하기에는 너무 늙었다. 다리에 힘도 없고 기억력도 떨어진다.”(5선 후)

“98년이면 내가 몇 살이냐.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지.”(6선 후)

그리고 98년 3월10일.

수하르토 인도네시아대통령(77)은 5년 임기의 대통령에 일곱번째 선출돼 취임했다.

이미 32년간 권좌에 앉은 그는 40년째 쿠바를 지배하는 카스트로 다음의 현존 최장수 집권자다.

21년 중부 자바의 작은 마을에서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수하르토는 중등교육만 받은 뒤 19세 때인 40년 네덜란드 지배하의 동인도 군에 입대, 일찌감치 군생활을 시작했다.

국군의 전신인 인민보안대 부대장으로 독립전쟁을 치렀고 이후 창설된 인도네시아군에서 착실히 군경력을 쌓았다.

47년 그는 자바섬 귀족가문 출신인 티안과 결혼한다. 그는 아내와 3남3녀를 끔찍이 아껴 중요한 국사를 가족회의에서 자주 논의했다. 티안은 96년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전까지 수하르토의 ‘유일한 야당’이자 조언자의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65년 육군지역사령부 사령관이던 그는 청년장교들이 일으킨 공산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진압하면서 역사의 전면에 나섰다. 그는 군부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이듬해인 66년 3월 좌익성향의 수카르노대통령으로부터 실권을 넘겨 받는 ‘무혈 쿠데타’에 성공, 정권을 장악했다.

그는 집권기간 중 연평균 7%의 꾸준한 성장을 이룩해 한때 국내에서는 ‘국가 개발의 아버지’로, 밖에서는 ‘성공한 개발독재자’로 꼽혔다.

30여년 권력을 유지한 그의 ‘노하우’는 무엇이었을까.

수하르토의 통치스타일은 인도네시아의 전신인 고대 자바왕국의 절대군주에 비유된다. 그는 강력한 친정체제와 언론통제 및 2인자를 만들지 않는 통치로 다소 신비스럽기까지 한 카리스마적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여기에 군에서 몸에 익힌 추진력과 함께 때로 대통령궁을 국민에게 과감히 개방하는 친화력과 철저한 인기관리로 통치의 기반을 닦았다. 때로는 미국 구소련 등을 상대로 외교전을 벌이며 제삼세계 지도자를 자처했다.

1만7천개가 넘는 섬, 2백여개의 서로 다른 종족, 2억명이 넘는 인구의 대국을 다스리는 나름대로의 비방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는 인도네시아 경제파탄의 ‘주범’으로 전락할 형편이다. 가족과 친인척의 족벌경제로 나라살림을 결딴냈고 잘못된 정책으로 외환위기를 불러왔다는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다.

▼과제〓위기에 빠진 경제를 살려내지 못하면 30여년 집권의 치적조차 모두 무위로 돌아갈 판이다.국가부도 직전까지 몰린 외환위기를 돌파해야 하며 물가폭등을 잡아 서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한 경제구조조정 등 경제개혁이 중요하나 그는 외부사회의 ‘충고’를 무시하며 ‘벼랑끝 외교’를 거듭하고 있어 위태위태하다.

IMF가 30억달러 지원을 연기키로 한데 이어 10일 세계은행도 10억달러 지원을 늦추기로 해 수하르토의 목을 죄고 있다. 대사를 소환한 미국의 압력도 부담이다.

장기집권과 족벌경제가 불러온 부정 부패 등 만연한 사회부조리의 개혁과 정치개혁도 그 앞에 던져져있는 과제다.

열대지방인들인데다 이슬람교의 특성대로 정치에 무관심해 그동안 별말이 없던 국민도 경제위기로 생활이 피폐해지자 전국 곳곳에서 소요와 폭동을 일으키며 항의에 나서고 있다.

수하르토는 ‘쌀’과 ‘자유’를 같이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 및 국제사회의 개혁요구 앞에 서 있다.

〈강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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