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을 잃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오만과 잘못된 관행은 버려라”
일본의 한국문제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이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외화부족으로 국제통화기금(IMF)과 선진국에 손을 내미는 처지이긴 하지만 한국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고통을 감내하고 국제사회의 규범에 맞는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재도약이 쉽지 않다는 게 ‘한국을 아는 일본인’들의 진단이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慶應)대 교수는 “한국이 당분간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특히 올해가 한국인에게는 ‘고통의 한 해’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슬기롭게 극복만 한다면 이번 위기가 장기적으로는 건강하고 부강한 한국으로 도약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오코노기 교수의 진단.
“이번 경제위기는 금융부문에 집중돼 있다. 따라서 금융개혁과 경제구조 개혁에만 성공한다면 3,4년 후에는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그는 특히 한국이 국가적 위기에 몰린 한 원인으로 ‘허세와 오만’을 지적했다. 경제발전의 허구에 도취해 내실보다 외형에 치중하는 경향이 각 분야에서 나타나 해외에서 눈총받는 일이 많았다는 것.
그는 또 “기존의 동양적, 특히 한국적 가치관을 모두 나쁘다고 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서구식 가치관은 아무래도 한국이나 일본같은 동양인의 감각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므로 한국경제가 다시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서면 한국과 서구의 가치관을 발전적으로 종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
그는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사회 전체가 위축돼 자신감까지 상실하는 것은 오히려 발전의 장애물”이라고 특별히 강조했다.
‘자신감’은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東京)대 교수도 주문했다. 상황이 어렵다고 자포자기하거나 방관하지 말고 적극적인 행동과 사고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
그는 “한국은 충분한 저력이 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경제적으로는 눈부신 발전을 경험한 나라다. 인적 자원의 수준도 높다”고 격려했다.
와다교수는 이와 함께 ‘국민적 단결’을 요망하고 새로운 정부의 출범은 분위기를 일신, 난국을 타파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외적으로는 일본이나 북한과 상호발전 및 협력이라는 미래지향적인 차원에서 열린 마음을 가져주기를 부탁하기도 했다.
경제평론가 오쿠자키 요시히사(奧崎喜久)는 한국이 겪고 있는 진통을 ‘로컬 시스템’에서 ‘글로벌 시스템’으로 편입되는 길목에서 겪어야 하는 불가피한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국은 이 과정에서 국제사회가 이해할 수 있는 규범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솔직히 그동안 한국은 자국내에서나 통했던 논리로 해외에 나갔다. 당연히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정부나 기업 국민 모두 더이상 우물안 개구리식 사고방식으로는 국제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충고였다.
정경유착, 각 분야에 만연된 뇌물수수 관행과 정실인사, 패거리 문화 등과 같은 낡은 껍질을 깨고 철저하게 실력위주로 평가하는 사회가 돼야 한국의 미래가 있다는 것이 오쿠자키의 시각이다.
〈도쿄〓윤상삼·권순활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