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97]국제금융계 호랑이 캉드쉬 IMF총재

  • 입력 1997년 12월 26일 20시 09분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총재(64)는 올해 아시아인들에게 두려우면서도 고마운 이름이었다. 위기를 맞은 한국 경제를 상대로 구제금융 협상을 벌이면서 자신의 뜻을 냉혹하게 관철할 때의 그는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그러나 그가 한국의 저력을 높이 사면서 『이번 위기만 잘 넘기면 한국은 3년내에 훨씬 균형잡힌 성장을 이루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할 때는 「고마운 훈수꾼」이었다. 그는 한국의 15대 대선 후 김대중(金大中)대통령당선자의 전화를 제일 먼저 받은 외국인이었을 만큼 한국에는 비중있는 인사가 됐다. 국내 일각에서는 그를 「우리 경제를 무장해제하는 미국의 앞잡이」로 보기도 하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가 86년 IMF총재에 선출될 때 미국의 지지가 배경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후 그는 특유의 배짱과 뚝심으로 미국 등 선진7개국(G7)과 자주 대립했다. 88년엔 제임스 베이커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 라울 알폰신 아르헨티나대통령의 재선을 돕기 위해 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했으나 캉드쉬는 『그럴 만한 사유가 없다』며 거부했다. 최근에도 그는 동유럽과 인도 브라질에 대한 지원을 주장하다 자금부담을 꺼린 미국 등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그는 특히 『IMF는 미국의 얼굴마담이 아니다』며 『개도국의 입장을 적극 대변하고 자기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그가 IMF사상 처음으로 5년임기의 총재직 3연임에 성공한 것은 미국마저 까다롭긴 하지만 그가 최적임자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에서의 IMF의 중심적 역할을 강조하는 그는 일찍이 국제금융시장 통합과 각국 중앙은행의 역할감소도 예언했다. 프랑스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하고 60년에 재무부에 투신한 정통 재무관료 출신인 그는 유럽경제공동체(EEC)의 프랑스대표로 일하면서 국제감각을 쌓았다. 82년 미테랑의 사회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재국장과 파리클럽회장을 겸임했고 84년 중앙은행총재를 거쳐 86년 IMF로 무대를 옮겼다. 그는 『한국은 여러해 전부터 IMF의 경고를 무시해 결국 위기를 불러왔지만 구제금융을 굴욕스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며 『이번 위기는 암세포의 확산이 저지된다는 점에서 한국에 유익하다』고 강조한다. 〈허승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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