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자폭탄 개발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시어도어 홀(71)이 구소련에 핵비밀들을 넘겨주었다는 사실을 50여년만에 처음으로 자인했다.
홀은 10월에 출간될 「폭탄―미국의 알려지지 않은 핵 스파이 음모의 비밀 이야기」라는 책에서 이를 처음으로 시인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의 행위가 미국의 핵무기 독점을 막기 위한 독자적 결단에 따른 것으로 지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조지프 올브라이트와 마르시아 컨스텔이 함께 쓴 이 책은 1944년 원자폭탄의 비밀을 소련에 넘겨준 최초의 첩보원도 데이비드 그린글래스와 클라우스 푸시가 아니라 홀이었다고 주장했다.
16세에 하버드대에 입학할 정도로 천재였던 홀은 44년 뉴멕시코주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에서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이듬해 투하된 플루토늄 폭탄 「뚱뚱보」 개발에 동원된 최연소 물리학자였다.
그는 『당시 19세였던 나는 독점방지에 도움이 되기 위해 소련 기관원에게 원자폭탄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릴 짧은 만남을 계획했다』고 밝혔다.
그 만남은 그러나 짧지만은 않았다. 44년말 홀은 대학 룸메이트였던 사빌 색스에게 「원자핵의 내부파열」 비밀이 적힌 메모를 전달했고 색스는 이를 뉴욕의 소련 정보총책 세르게이 쿠르나코프에게 넘겼다. 이후 「믈라드」라는 소련측 암호명을 지니게 된 홀은 45년에도 두차례에 걸쳐 미국 핵개발계획의 상세한 진척상황을 전달했다.
이 책은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50년 소련의 암호 전문을 해독해내면서 이런 사실을 포착했으나 소련측이 암호해독 사실을 눈치챌까봐 이를 결정적 증거로 삼지 못해 홀과 색스의 자백을 받아내지 못했다고 소개했다.
62년 홀은 FBI의 감시를 피해 영국으로 옮겨 케임브리지대에 둥지를 틀었다. 그후 그는 전자현미경을 통해 세포내 미량원소의 농축 지도를 작성하는 「홀 방법」을 개발, 국제적 명성을 얻었으나 FBI수사에 대한 불안을 떨쳐버리지는 못했다고 이 책은 설명했다. 색스는 80년에 숨졌다.
홀은 『당시 내 행동은 전적으로 자발적인 것이었으며 나는 그 누구에게도 포섭되지 않았다』며 자신의 행동을 스파이짓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그러나 『당시 나는 덜 성숙하고 경험도 없었으며 지나치게 자신에 차있었다』고 회상하면서 『내 판단이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토로했다.
〈권재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