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참가기/인도]사촌간 결혼은 『흔한 일』

  • 입력 1997년 9월 23일 07시 54분


배안에서의 기상시간은 오전 5시.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내가 찾는 곳은 빈 강의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다. 그때마다 배 청소를 하고 있는 내 또래 필리핀 출신 선원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우리가 공부하거나 술을 마시고 노는 동안에도 잠을 설쳐가며 열심히 일을 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고국의 웬만한 회사 임원들이 받는 만큼의 월급을 챙기며 뿌듯해했다. 새삼 노동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흥미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홈 스테이. 2박3일동안 인도 현지인의 집에 묵으며 그 곳의 생활을 몸으로 익히는 것으로 매우 인상적이었다. 홈 스테이 기간동안의 룸메이트는 에런. 그리고 우리들의 호스트는 라젠다였다. 그의 아내를 소개받은 곳은 그가 운영하는 슈퍼마켓. 그곳에서 부부가 함께 일하고 있었는데 둘이 어떻게 만났느냐고 물으니까 「사촌간」이라는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아니 이게 무슨 말?』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으니 그곳에선 사촌간에 결혼하는 게 흔한 일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사촌이라고 해서 무조건 혼인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쪽일 경우엔 아버지의 누나나 여동생의 자녀, 어머니쪽은 어머니의 오빠나 남동생의 자녀와만 혼례를 치를 수 있다. 일부 지방에서는 외삼촌과 조카가 혼인식을 올리는 풍습도 있다고 한다. 「근친상간은 악」이라는 고정관념이 틀어박힌 나에게는 그들이 비정상적으로 보였는데 거꾸로 그들은 어리둥절해 하는 나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웃기만 했다. 홈 스테이 첫째날. 이곳의 로터리클럽 회장 나자와 함께 라젠다 집에서 저녁식사를 한 뒤 그들과 함께 밤나들이를 했다. 뭔가 「환락」을 머릿속에 그렸던 나에게 기대와는 전혀 딴판인 거리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영화 「기쁨의 도시」의 한 장면처럼 집없는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거리에 나와 앉아 있는 모습들. 놀라웠다. 아무리 가난한 나라이기는 하지만. 승용차를 타고 한동안 달려가자 일행 중 한명이 차에서 내린 뒤 맥주 4병을 귀중품이라도 되는 듯 감춰 갖고 왔다. 그리고 종이컵으로 한잔씩 따라주면서 하는 말이 『이곳에선 종교 때문에 음주에 제한이 많다. 집밖에서는 이렇게 몰래 마셔야 한다』는 게 아닌가. 「아무리 가난하고 사는 게 힘들어도 술 권하는 따뜻한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다음날 아침 스케줄은 마드라스의 악어공원과 해변사원 둘러보기. 악어공원은 한때 멸종위기에 몰렸던 악어의 보존을 위해 만든 공원. 그러나 지금은 「종족번식」에 성공, 일반인에게 분양도 해준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공원에는 악어들이 제대로 움직일 공간이 없을 정도로 그 수가 많았다. 「어구밀도(魚口密度)」가 엄청나게 높은 셈이었다. 공원 안쪽에 자리잡은 게 코브라쇼 공연장. 공연장 곳곳엔 많은 항아리들이 놓여 있었고 뱀 사육사는 그중 손에 잡히는 항아리에 꼬챙이를 집어넣어 뱀을 끌어내 요리조리 움직여 보여준다. 뱀의 몸이 조금 풀렸다 싶을 즈음 사육사가 빨간 수건을 펼쳐 들었다. 그러자 다시 흥분하기 시작한 코브라는 돌연 머리 뒷부분의 날개같은 것을 펴더니 빨간 수건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 다음 작업은 코브라 독 받아내기. 사육사가 익숙한 솜씨로 받아낸 독은 코브라에게 물렸을 때 해독제로 사용된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라더니…. 하루는 마드라스의 한 여자대학을 방문, 인도 여대생들의 수업을 참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다른 나라 금남의 캠퍼스에서 여학생들의 예쁜 얼굴을 훔쳐 보는 것은 무엇보다 신나는 일이었다. 「쉬는 시간에 이들과 잠깐동안 이야기를 나눠 봐야지」라는 나의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여학생들은 수업이 끝난 뒤 곧바로 운동장으로 몰려 나갔다. 이른바 교련수업. 「발 맞춰 가」 「번호 붙여 가」라는 구호도 들렸다. 오랜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지난날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자구책에서 이런 교육을 받는 모양이었다. <문형진씨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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