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 영결식 표정]성녀 가시는길 150萬명 운집

  • 입력 1997년 9월 13일 18시 22분


테레사수녀가 인류의 곁을 떠나 하늘에 오른 13일. 캘커타의 운구연도에는 현지 경찰의 예상보다 훨씬 많은 1백50만명의 추도객이 운집했다. 인도 전역은 물론 지구촌 전체가 TV의 생중계를 통해 성녀(聖女)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며 애도했다. 장례식에는 23개국 대표가 조문사절로 참석했다. ○…수녀의 유해는 오전 9시(이하 현지시간·한국시간 낮 12시반) 성 토머스 성당을 출발, 캘커타시내 중심도로인 파크 스트리트와 마요로드를 거쳐 곧바로 장례식장인 네타지 실내체육관으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인도당국이 노선을 변경. 이에 따라 유해는 퀸스웨이와 레드로드 등 5㎞를 돌아 체육관으로 옮겨졌으며 이 때문에 예정시간보다 10분 빠른 오전 8시50분에 성당을 출발. 노선변경은 좀더 많은 시민들이 수녀의 마지막 길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연도의 인파도 분산시키기 위한 것. ○…유해는 8명의 군인에 의해 성당 앞 3백m 지점에 대기중이던 포차(砲車)에 실렸다. 포차 주위에는 붉은색 터번을 쓰고 감색 예복을 입은 군의장대 8명이 양쪽에서 호위. ○…추도객들은 아침 7시부터 모여들기 시작, 운구가 시작될 때는 도로변이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 이들은 유해가 지나가는 10∼12초의 짧은 시간 동안 조화를 던지거나 성호를 그으며 명복을 빌었다. 운구를 쫓아가던 한 노파는 『테레사수녀는 이처럼 거창한 장례식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이번 장례식으로 그녀가 바라던 대로 사람들이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피력. ○…영결미사는 네타지 경기장 임시단상에서 거행됐다. 단상에는 「사랑의 실천은 평화의 실천」이라는 수녀의 생전 어록이 큰 글자로 새겨졌다. 미사는 추기경과 주교 등 50명의 사제가 집전했으며 1백25명의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로 구성된 성가대는 「주님에게 영광을」 「내가 주님을 부른 날」 등 성가를 합창. 인도의 국민가수 우사 웃돕(여)도 「오 마더 테레사」 등 추모노래와 조가를 열창.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영결미사는 △추기경과 대주교 등 사제단 등단 △캘커타 교구장 헨리 드수자 대주교의 추도사 △시작 제의 △유해에 대한 축수 △회개의식 △복음낭독 △성가합창 △니르말라 수녀의 추도사 △소다노 추기경의 설교 △봉헌 △외국 조문사절단 헌화 △전례성찬 △기도 등의 순으로 진행. ○…3백여명의 외국 귀빈들은 인도당국이 마련한 특별기 2편을 이용, 뉴델리에서 캘커타로 이동. 다만 힐러리 클린턴 미국대통령부인은 대통령전용기 편으로 상하원의원 등 20여명의 조문단과 함께 12일 자정 캘커타에 도착, 가장 좋은 타지 벵갈호텔 스위트룸에서 숙박. ○…수녀의 유해는 「사랑의 선교회」 본부에 있는 본인의 생전 집무실 지하에 안장됐다. 비공개 안장식에는 「사랑의 선교회」 수녀 및 관계자들과 가톨릭 인사 등 소수만 참석. ○…캘커타 신문들에는 「사랑의 열매는 봉사이며 봉사의 열매는 평화」 「우리들에게 사랑과 봉사를 가르쳐준 어머니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당신은 영원히 우리 가슴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등 많은 단체와 개인들의 추모광고가 게재되기도. 〈캘커타〓정동우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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