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특집/일본은 어디로?]작가 한수산씨의 전망

  • 입력 1997년 8월 15일 20시 22분


야구방망이로 교사를 때리는 청소년문제는 이미 일본에서는 오래 전의 일이었다. 평생직장이란 말을 만들어낸 일본이지만 이제 전직(轉職)은 흔한 일이 돼 있다. 남편과 한 지붕밑에 살 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별거상태나 마찬가지인 부부를 두고 「가정내 이혼」이라고 불렀던 일본에서, 남편의 정년퇴임과 함께 이혼을 해버리는 「정년이혼」이 사회적인 문제가 된 것도 이미 몇년전부터의 일이다. 30대 주부들이 벌이는 불륜을 그려 대히트를 했던 TV드라마 「금요일의 아내들」이 있었다. 「사랑에 빠져서」라는 주제가와 함께 주부들의 불륜 붐을 만들어냈던 드라마였다. 그리고 십여년이 지난 오늘, 같은 불륜을 그렸으면서도 두 연인이 장렬하게(?) 정사(情死)로 사랑을 마감하는 소설 「실락원」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소설의 현장을 찾는 여인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키 크고 학력 좋고 돈 많이 버는 남자, 이름하여 삼고(三高)가 미혼여성들이 바라는 결혼상대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이젠 변해 「삶을 즐길 줄 아는 남자」가 요즘 젊은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결혼상대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키작은 남자들도 요즘은 살 만하다. 변화하는 일본과 변화하지 않는 일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중 하나가 주택이다. 국제적으로 「토끼집」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좁은 일본의 주택이지만 최근에는 넓은 집을 짓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대저택이라고 부를만한 큰 집을 지으면서도 거기에 다다미를 깔고 고다츠(일본식 화로)를 놓은 조그만 일본식 방을 꼭 마련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사회, 그것이 일본일 것이다. 거품경제로 들떠있던 90년대 초반에 비해 일본은 차분해지고 많이 가라앉아 있다. 서구와의 경쟁에서 일본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는 당당한 자신감도 있다. 그리고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일종의 공허감같은 것이 이어진다. 수면위로는 어떤 격렬한 변화도 느껴지지 않는 이 조용함 속에 변하지 않는 일본사회의 축이 또한 견고하게 다가온다. 일본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로서 한 때 그 사회에서 유행했던 말들을 떠올려본다. 연예인 비토 다케시가 유행시켰던 「빨간 신호라도 여럿이 건너면 무섭지 않다」. 그리고 또 하나가 「좁은 일본, 그렇게 서둘러 어디로 가는가」이다. 교통안전 캠페인의 하나로 쓰여졌던 이 말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한반도를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보다 넓은 국토를 가졌으면서도 스스로를 「좁은 일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서둘러 어디로 가는가라고 자문한다. 빨간불도 여럿이면 무섭지 않다. 신호 등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어도 여럿이서 건너가면 아무것도 두려울게 없다는 이 집단의식 또한 여전히 선도높게 살아있다. 오늘의 일본사회가 이 조용함을 깨고, 이제부터 떼지어서 빨간불을 건너 어디로 갈 것인지…. 일본인 자신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오늘의 일본사회다. 한수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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