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 정부 「폴 포트 투항」반신반의…반군측 허위정보 의심

  • 입력 1997년 6월 19일 20시 06분


크메르 루주와의 항복협상을 추진해 온 캄보디아의 노로돔 라나리드 제1총리와 협상을 반대해 온 훈 센 제2총리가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프놈펜 시민들은 폴 포트의 투항여부를 놓고 반신반의하고 있는 분위기다. 19일 캄보디아 우느후트 외무장관도 폴 포트가 항복했다는 사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며 『2,3일 기다려 봐야 확실한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폴 포트 항복보도가 나오게 된 것은 크메르 루주와 항복협상을 벌여온 육군참모차장 넥 분치하이장군이 이날 저녁 캄보디아 북부 안롱벵주에서 반군지도자들을 만나고 돌아와 AP통신에 폴 포트의 항복을 알리면서부터. 분치하이장군은 밀림속에 도피중이던 폴 포트가 식량과 의약품이 떨어져 결국 항복의 길을 택했다고 전했다.그러나 라나리드총리의 심복이기도 한 분치하이장군의 말을 훈 센 제2총리측은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있다. 크메르 루주가 허위정보를 흘려 정부측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속임수라는 것. 전날 프놈펜에서 수신된 크메르 루주 라디오도 폴 포트가 투항했다고 보도했으나 당시 상황 및 폴 포트의 소재가 언급되지 않아 진위에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훈 센총리는 『모든 것은 아직 의혹에 싸여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프놈펜 언론들의 분위기는 비교적 담담한 편. 프놈펜에서 유일한 조간신문은 1면 중간기사로 폴 포트가 항복했다는 설이 있다고 실었고 현지 방송은 폴 포트의 항복설을 전하면서 폴 포트정권 때 저질러진 「킬링필드」의 모습을 자료화면으로 방영했다. 프놈펜의 한 호텔 지배인은 『캄보디아에서 폴 포트의 학살피해를 보지 않은 가정은 거의 없다』며 『그에 대한 캄보디아인의 원한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인들이 오랜 전쟁과 학정을 겪어 감정을 쉽게 잘 드러내지 않을 뿐이라고 무덤덤한 반응을 나름대로 분석했다. 〈프놈펜〓정동우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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